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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05~2014)
 어찌 그런 삶을 사셨나이까?
 작성자 : 꺾은 붓  2017-10-16 09:01:14   조회: 269   

어찌 그런 삶을 사셨나이까?

 

  매주 일요일 고등학교동창 녀석들과 함께 서울근교 대중교통이 닺는 산들을 골라 20여 년째 주말산행을 하고 있으며, 많을 때는 2~30여명 적을 때는 7~8명이 함께 한다.

  어제는 모처럼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해맑은 가을날을 맞아 서울근교에서는 아름답기 으뜸으로 꼽는 도봉산 자락(둘레)길을 9명이 함께 걸었다.

  다른 친구들은 수 없이 걸은 길이지만 한강남쪽에 사는 나는 관악산이나 청계산은 자주 갔어도 도봉산은 그렇게 많이 가지를 않아 좀 낮선 산길이다.

  지하철 1호선 도봉산 역 앞 계곡 초입에 마련된 <수변 테-크>라는 곳에 모여 솔밭 사이 오솔길을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수도 없이 하고 숨을 헐떡거리며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쌍봉 전망대에 올라 천하비경인 도봉산 돌 바위와 삼각산(북한산의 우리 본래이름)돌 바위를 뒤-ㅅ배경 삼아 사진을 몇 컷을 찍고 전망대에서 남산을 바라보니 팔각정이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하고 한강 건너 관악산과 청계산이 왜 오늘은 자기를 찾지 않았느냐고 볼을 내밀고 있는 듯 했다.

 

  솔밭 사이 오솔길 옆에 방석을 펴고 9명이 둘러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를 한 나절 하고 얼큰한 기분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도봉산 자락 북쪽 둘레 길로 깊숙이 돌아가자고 했지만 내가 새로 개통된 실설~우이동 간 경전철을 한 번 타보자고 우겨 남쪽 길로 하산코스를 잡았다.

  조금 가려니 한 친구 녀석이 “윤재학 동무 오늘 연산군 만나보겠네!”하며 놀리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나의 통일에 대한 목말라 함과 진보성향의 성격을 빗대 북한에서 통용되는 “동무”라는 수식어를 붙여 나를 높이(?) 떠받든다.

  한참을 내려오니 세종대왕의 큰 따님이신 ??공주와 그의 부군합장묘가 잘 가꿔져 있었다. 들어가서 참배를 하려고 했으나 철제 울타리가 쳐지고 출입문도 자물통을 채워 놓아 철문 앞에서 고개만 숙여 천하성군의 따님과 부군에 대한 예를 갖췄다.

  조금 돌아가니 연산군 묘가 나타났다.

  어느 책에선가 연산군은 경기도 양주군 어느 곳에 묻혀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어 연산군은 막연히 노원구 상계동 어느 야산자락에 묻혀있으려니 했는데 도봉산 자락에서 연산군을 상면하게 되었으니 천만 뜻밖이었다.

  제일 위에 연산군과 그의 부인의 쌍묘가 있고, 그 하단에 태종대왕의 후궁(의정궁 조씨)묘가 있고, 그 밑에 연산군의 딸과 부군의 묘가 함께 있었다.

 

  세종대왕의 공주 묘와 달리 연산군 묘는 개방이 되어 있었다.

  묘역에 오르니 더 이상 묘지내로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야트막한 밧줄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한편에 “출입금지”와 “CCTV촬영”이라는 경고문이 걸려 있었다.

  그 한편에는 7~80대로 보이는 노인 10명이 솔 나무 그늘 밑에 둘러 앉아 늦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경고문이야 있건 말건 밧줄을 넘어 맨 꼭대기 연산군 부부의 묘로 가서 절 2배반을 올리고(폐위를 당하지 않은 정상적인 임금님이었다면 4배 반) 뒷걸음으로 걸어 내려와 노인들이 둘러않은 묘역 한 가운데 서서 큰 소리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군(燕山君)이시여!

  건원릉 가시는 길에 생전처음 외할머님을 만나 뵙고 그의 전인으로부터 들은 어머니의 비통한 죽음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셨나이까?

  하지만 비통함과 원한은 가슴 깊숙이 묻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정을 베푸시고 만백성의 고달픈 삶을 따듯이 다독였어야지요!

  군께서 주무른 10여 년간 조선천지는 한 여름에도 서릿발이 치고, 서울장안은 피울음이 그칠 날이 없었나이다.

  천년을 두고 참회와 반성을 하십시오!

  그리고 후세들을 위하여 군께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습니다.

  정치인들 꿈에 현몽하시어 ‘다시는 나와 같은 비극의 길을 걷는 난정을 펼치지 말 지어다!’하고 엄히 훈계 하시옵소서.”

  하고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몇 노인은 미친 사람이 떠드는 것 아닌가 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고, 몇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억겁을 기다리고 하늘의 선택을 받아야 사람으로 태어나고, 수억의 인총 중에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억겁이 억 만 번 쌓여야 가능한 일이었거늘, 그 하늘의 베푼 기회를 어찌 그런 삶을 살아 악명을 만세에 남긴단 말인가!!!!!

 

  헌데 웬걸!

  명색이나마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짧은 헌정사에서도 여러 차례의 정권찬탈과, 살육의 광란과, 똥 냄새 진동하는 썩은 정치가 그칠 날이 없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죽어나느니 힘없는 무지렁이 민초들뿐이다.

  아마 연산군이 살아 있다면 “네놈들도 별 수 없구나!”하고 빈정거렸을 것이다.

 

  등산을 마치고 새로 개통된 우이역 옆 호프집에서 생맥주로 목을 축이는 뒤풀이를 하고 전철에 올랐다.

  “경전철”이라는 말 그대로 차량은 다른 지하철과 달리 달랑 두 칸에, 한 칸의 길이도 다른 전철의 2/3쯤으로 짧고, 차량의 폭은 뚱뚱한 사람은 서있기도 불편할 정도로 비좁았다.

 

  그 근방에 있으련만 갈길 재촉하는 친구 녀석들 성화에 <4-19묘지>를 참배하고 오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4.19묘지는 전에 몇 차례 참배를 했었고, 내년 4.19기념식에는 꼭 참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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