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이 ‘#MeToo’ 보도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보내왔습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언과 고발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로 다루지 않았는지, 피해 내용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는지 등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이 지켜졌는지 따져야 합니다.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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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자

정슬아(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2017년 미국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가해행위에 대한 고발로 크게 주목받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MeToo’ 운동이 한국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 영화계, 교육계, 종교계, 의료계, 정치계, 출판계, 미술계, 언론계, 운동사회 등 수많은 영역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언과 고발이 SNS와 언론을 통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와 2016년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시작된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등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오던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의 역사 속에 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옆에 서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지난 금요일(2/23),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는 한국여성민우회가 개최한 행사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가 열렸다. 다음은 행사를 개최하게 된 이유다.

여성들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성폭력이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강간문화'를 뒷받침한 것들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문화, 성적 '농담'과 '가벼운' 추행은 별일 아니라는 분위기,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체하는 구성원들, 오히려 문제제기한 사람을 불편히 여기고 피해자의 행실에 대해 수군대는 목소리. 더 이상 가해자만 도려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사회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말하기는 우리 일상에서 정의에 대한 평균 감각이 변화해야 한다는 외침이다.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옆에 서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이러한 외침은 ‘그들의’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이자, 그 과정에 함께 행동하자는 제안이다. ‘#MeToo #Withyou’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상 속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와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언론은 어떤 모습과 방향으로 초대에 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거칠게나마 나누고자 한다.

 

성폭력 피해 고발자들이 언론을 2차 피해의 발생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유

현재 ‘#MeToo' 운동에 동참한 성폭력 피해 고발자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공동체)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언론사를 찾는다. 자신의 얼굴, 실명 등을 공개하며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개인 SNS에 가해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움직임이 이전보다 늘어난 것이다. 성폭력 피해 고발 이후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부당한 공격이 있을 것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제대로 사건이 알려지고,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언론은 성폭력 피해를 겪은 고발자들을 보호하기보다 피해상황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와 사건발생과는 무관한 피해자의 업무능력이나 평판에 대한 악의적 소문을 확산시키는데 일조하여 추가피해를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검찰 고위 간부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최초 보도된 이후 언론들은 일제히 가해자와 사건해결에 책임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기사들을 쏟아냈다. ‘검찰 고위간부 성폭력 사건’이 아닌 '여검사 성추행 사건'으로 명명되거나 피해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을 기사제목에 넣거나 불필요하게 장시간 방송화면에 노출시키기도 했다.

아무리 피해자가 직접 얼굴이나 이름, 피해사실을 상세히 공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고민 없이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옳은 일일까.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등의 정보가 노출되어 추가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자던 언론인들의 약속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일까. 성추행의 사실을 보도함에 있어 “억지로 벽에 밀쳐…발버둥치자…손을 뿌리치자…”따위의 설명이 꼭 필요한 걸까.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삽화와 재현장면 등을 통해 피해사실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은 무얼 위한 걸까. 우리가 언론을 통해 알아야할 정보는 이것이 아니며, 피해자가 언론에게 기대한 것도 범죄행위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성추문’ ‘몹쓸짓’

‘Metoo·나도 당했다’ ‘성추행 쓰나미’ ‘거장의 몰락’ 등의 단어가 보여주는 것들

언론보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성폭력 사건을 ‘성추문’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또 다른 변주는 ‘몹쓸짓’ 등이 있다. 이 단어들은 성폭력 사건을 “추잡하고 좋지 못한 소문” 정도로 축소시키고, 일상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성폭력의 문제를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함으로써 장벽을 깨부수는 힘을 드러나지 않게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Metoo’ 운동의 번역어로 쓰는 ‘나도 당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미투운동 참여자들이 단순히 피해를 ‘당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성폭력 사건을 “겪었고” 고발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데 “함께 하겠다”는 주체적인 의지표명의 맥락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들은 피해 생존자이자 고발자이며 증언자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설명부터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성추행 쓰나미’ ‘성추문 태풍’ ‘00계에 휘몰아친 성추행 쇼크’, ‘거장의 몰락’ 등의 단어는 피해자의 고발로 가해자가 쌓아온 업적, 업계의 위상이 무너졌다는 잘못된 시각을 전달한다. 이는 범죄 행위자를 문제 삼기보다는 피해자를 탓하며, 조용히 넘어갈 일을 괜히 크게 알려 사회적 손실을 가져옴은 물론이고 가정을 파탄내고 있다는 어이없는 말들을 만들어 낸다. 누군가의 피해와 침묵으로 만들어진 명예와 위상, 업적이라면 무너지는 것이 옳다. 다시 쌓아올릴 자신이 없다면 가해자 본인과 업계가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 피해자 자신을 탓하고, 걱정할 영역이 아닌 것이다.

이외에도 “난 나름대로 깨끗하게/열심히 살았다”, “관행, 관습적으로 생겨난 나쁜 행태”이기 때문에 ‘나만 그런 거 아니다’류의 가해자의 말,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시각은 불편하다”, “남성들이 위축되고 있다”, “모든 일들이 간단하게 폭력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고 피해자의 말이 사실이란 증거도 없는데”라는 ‘시민 인터뷰’1)를 구태여 보도하여,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게 하여 피해자를 의심하거나 위축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왜 언론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두둔하는 누군가의 의견을 공론의 자리로 끌어들여 힘을 실어 주는 걸까. 그것이 언론, 사회가 성폭력 사건의 문제, 재발의 방지, 문제의 해결의 행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문제는 성폭력 사건을 자극적이고 흥미로는 가십거리로 만드는 ‘일부’ 언론의 행태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일까.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

몰랐다면 챙겨보고, 알고 있었어도 다시 보자

한국여성민우회(2006년)는 이처럼 언론이 ‘성폭력 근절’이라는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알리며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2)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성범죄 보도기준)을 제정하였으며, 2014년 성폭력 사건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제작한 '성폭력 사건 보도 수첩'에도 언론에서 성폭력 사건을 취재‧보도할 때 유의할 점을 단계별로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참조할 만한 좋은 가이드라인이 많다는 얘기다.

우리는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는 왜 그런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는지, 사건발생 이후 피해자가 문제제기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취재하여 보도할 것이라 기대한다. 단순히 피해자가 누구이며, 얼마나 ‘끔직하고’ ‘심각한’ 피해를 겪었는지를 알리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사건이 공론화 될 때 피해자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거나 피해자가 원치 않았음에도 실명이나 목소리, 사진 등이 언론의 이름으로 유포되는 반복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

“몇몇 괴물이 아닌, 구조를 바꾸자”

‘#MeToo’ 운동이 이어지면서 이전에 비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심층보도가 늘어나고, 언론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성폭력 문제에 대한 '#MeToo' 영상이 공영방송에서 제작되고, 그간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태도의 문제점을 자신들의 보도에서부터 성찰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많은 변화가 있어온 것도 맞지만 취재의 결과가 아닌 개인들의 고발과 증언으로 공개되는 성폭력 사건들이 계속 공론화될 때에 언론은 어떤 기준으로 기사를 쓰고, 방송을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적으로는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과 같이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보도윤리, 사회적 책임을 언론인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약속하는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잘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은 지켜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실제 반영해야 하는 구성원들에게 가닿지 않으면 바쁜데 귀찮게 하는 무엇으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폭력 사건의 보도의 신중성과 가이드라인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언론계 내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조직적 성찰과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도 함께 확인하는 자리여야 하겠다.

성폭력을 비롯한 성범죄는 특정한 영역의 노력으로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거나 몇몇 ‘괴물’을 처벌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 그간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증언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피해사실을 얘기하는 것에 그 어떠한 불이익 없이,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가능할 것이란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구성원으로 언론인들과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성폭력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 (한국여성민우회, 2006)

▣ 폭력의 성애화

-성폭력은 명백한 폭력이다. 성폭력을 가해자의 변명을 인용해 설명하거나 희화화,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1.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로 다루지 않는다.

2. 폭력인 사건을 연애, 성적인 관계로 바라보지 않는다.

3. 피해의 내용을 자세히 묘사해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 잘못된 통념 재생산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할 수 있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4. 성폭력을 일상과 분리된 범죄로만 부각하지 않는다.

(예. 가해자를 쉽게 정신이상이나 인면수심, 짐승으로 취급하고 비일상적인 인물로 묘사함.)

5. 단순한 성욕의 문제로 성폭력을 바라보지 않는다.

6. 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로 다루지 않는다.

7. 성폭력 사건 예방을 위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여성 개인의 예방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8. 성폭력을 여성의 순결함이 훼손된 일, 그러므로 수치스러운 일로 바라보지 않는다.

9. 자신의 가해를 변명하는 가해자의 말을 부각시키는 보도하지 않는다.

10.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용어를 사용해 사건이나 가해자를 지칭하지 않는다.

▣ 실효성 없는 대책을 부풀리기

-성폭력 문제 대책 보도에 있어 현행 법 제도가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에 부족한 지점들이나 제도개선을 위한 쟁점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실질적 공공성'을 갖추어야 한다.

11. 검증되지 않은 대책을 단순 나열하지 않는다.

12. 논의 과정 중에 있는 정책을 이미 시행 중인 것으로 오독하게 하는 표제를 쓰지 않는다.

▣ 정치적 쟁점의 소재로 성폭력 사건 이용

- 성폭력은 피해자 인권의 문제이다. 성폭력 사건을 다른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비화시켜서는 안 된다.

13. 성폭력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거나,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이용하는 행태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는다.

1)“더 조심해야죠”…‘미투’에 긴장하는 남성들(채널A 2018-02-01 19:12)

http://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077876

2)성폭력 사건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제작한 '성폭력 사건 보도 수첩'   http://www.mogef.go.kr/mp/pcd/mp_pcd_s001d.do?mid=plc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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