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KBS 사장이 살펴야 할 내용을 보내 왔습니다. 시청자들은 방송 보도만을 보고 방송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어떤 구조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살펴 ‘좋은 방송’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최근 불거진 방송사 내부의 갑질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성폭력 사건, 장시간 노동 등 노동인권 보장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지켜보고 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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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를 둘러싼 어두운 그늘들

-공영방송 KBS 사장이라면, 반드시 살펴야할 것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KBS 사장 최종 후보로 양승동 PD가 최종 선출됐다. 청와대의 재가와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만 거치면 KBS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제 ‘달라진’ KBS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양승동 PD와의 인연은 2007년, 그가 PD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던 때였다. 한미FTA 체결이 방송 공공성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던 그 시절. 당시 필자는 활동 초창기였기에 내용적으로 깊이 인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는 분들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한다. 양승동 PD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양승동 PD를 다시 만난 때는 KBS에서였다. 2009년 이명박 정권 초기 언론장악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시절이었고 KBS는 곧바로 타깃이 됐다. 정연주 사장 해임을 시작으로 이병순 후임사장이 들어서면서 비판적 시각을 가진 구성원들의 비제작부서 발령,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의 폐지 논란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연속이었다. 양승동 PD는 당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 공동대표를 맡으며 언론장악 시도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다, 양승동 PD는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양승동 PD는 KBS 구성원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겸손한 태도로 대했던 그였다. 양승동 PD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양승동 PD는 촛불 이후 공영방송 KBS에 필요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장출마를 선언하며 약속한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제작자율성 침해 및 인사전횡에 대한 진상조사·책임규명’은 누구보다 잘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걱정되는 것들도 존재한다.
 


KBS를 둘러싼 어두운 그늘들

KBS에는 ‘적폐청산’과 ‘방송정상화’ 이외에도 KBS를 둘러싼 어두운 그늘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 벌어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양승동 PD가 사장으로 임명되면 꼭 살펴봐야할 사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공영방송 KBS가 가야할 길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KBS는 한겨레21 ‘상품권 페이’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것이 드러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1) 언론중재위 조정은 현재 불성립된 상태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추가수당’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작가 B씨는 KBS 파일럿 프로그램에 투입돼 일하고 그 대가로 현금과 상품권을 함께 받았다. KBS는 이 중 상품권으로 지급된 부분(100만원, 상품권 115만원)은 추가수당이라고 주장한다. 그야 말로 ‘주장’이 그렇다는 거다. B씨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받을 임금이 얼마인지를 보고 일했다. ‘현금=임금’, ‘상품권=추가수당’이라고 알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상품권 페이’이 논란이 되자, KBS에서는 ‘상품권=추가수당’이라는 신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억지스럽다.
 

 

KBS 내 ‘상품권 페이’ 지급 사례가 해당 프로그램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미 KBS가 ‘프리뷰어’ 등을 구할 때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급한다”는 공지문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가 그에 대한 개선 의지를 밝히기도 전에 ‘추가수당’이라는 개념을 동원해 언론중재위에 나선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KBS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또한 눈여겨봐야할 부분이다. KBS에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보도국 사회1부에서 일했던 A씨(리서치)가 밝힌 성폭력의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A씨가 사회1부 행정팀장 B기자에게 당한 성추행 수준은 물론, 그 후로 발생한 무수한 2차 가해들이 드러났다. KBS 기자들 사이에서 ‘고소취하 요구’가 이어졌고 ‘대규모 아웃팅’이 발생했다. KBS와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A씨는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했다. 가해자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사과강요 연락’을 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을 비정규직이었던 A씨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컸을 터다. 하지만 KBS는 A씨를 보호하지 못했다. A씨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KBS 보도국에서 나오는 미투운동 관련 기사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KBS는 현재 해당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감사에 착수했다. “피해 사실 뿐 아니라, 2차 피해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 엄정하게 징계하겠다”고 밝혔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미투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요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공영방송의 현실은 매우 씁쓸하다.

성폭력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범죄다. 특히, 젠더이분법화된 사회에서 성폭력이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끊어낼 수 없다. KBS가 그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여성의 외모를 소재로 삼으며, KBS 예능에 성범죄 가해자들을 출연시키고, KBS 드라마를 통해서는 가부장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내용들이 방영되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 지난 파업 기간 KBS <뮤직뱅크>에서 걸그룹의 몸매를 훑지 않는 카메라워크가 나와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KBS는 무겁게 받아들어야 한다.

KBS가 공영방송으로 중심을 잡으려면 세심한 곳에서 달라져야 한다. KBS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선제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집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수어방송’이 빠진 부분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단, 자막을 넣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시각장애인들 역시 일상적인 언어로 국민적 스포츠행사를 볼 권리가 있다. KBS는 그런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KBS는 어떤 입장인가

언론계에서 벌어진 혹은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KBS의 입장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최근 오마이뉴스가 대법원 출입기자단으로부터 1년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3) ‘국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법원 판결문을 공개했다는 이유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다수의 출입기자단 성원이 12개월 출입정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궁금하다. KBS는 과연 어떤 투표를 했을지. KBS 또한 오마이뉴스가 한 보도행태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중징계를 받을 일을 했다고 보는가.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밤샘·장기간 노동이 일상화 돼 있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고 있는 대목이다. 그로 인한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최근 발생한 tvN <화유기> 추락사고 또한 그 맥락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국회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52조에 따른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방송업’을 제외하는 안이 논의 중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질의가 나왔다. ‘콘텐츠사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방송국 PD들이 불만이 많다’라고 한 국회의원의 발언. KBS는 어떤 입장인가. KBS가 먼저 나서서 인권이 보장되는 방송제작 환경을 만들고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는 방송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두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라면 당연히 앞장서서 살펴야할 부분들이기도 하다. 양승동 PD는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이야기했다. 그를 위해서는 수신료 인상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KBS가 구성원들로부터, 방송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부터, 그리고 시청자들로부터 어떤 평가와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진정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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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레21(2.26 제1201호) KBS의 자기연민

KBS는 최근 <한겨레21>의 “허위·왜곡 보도로 인하여… 국가 기간방송사로서 명예가 실추됨과 동시에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게 됐다”며 해당 기사에 대한 정정·반론보도와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왔습니다. 이들의 논리는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작가료 ‘일부’를 상품권으로 지급한 것은 사기 진작을 위한 ‘추가 수당’으로, 정규 편성 실패 때문이 아니며,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협의했다는 것입니다. 22일 중재위에서 이들을 만났지만 해당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는 물론 <한겨레21>의 사과와 손해배상까지 요구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조정은 ‘불성립’되었습니다. ‘상품권 페이’라는 사실의 ‘해석’과 몰상식하고 위법 소지가 큰 원고료(사실상 임금) 지급이 이뤄지게 된 ‘의사결정 과정’을 보는 <한겨레21>(결국 상품권을 받은 작가)과 KBS의 인식이 화해하기 힘든 차이를 보이는 셈입니다. http://h21.hani.co.kr/arti/reader/together/44959.html

2) '미투' 동참한 KBS, 6년 전 내부 성폭력은 '쉬쉬' (PD저널 2018.02.24.)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646

3) 출입정지 1년 먹은 <오마이뉴스>가 법조기자단과 법원에 띄우는 글 (201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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