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만 23만여 명 … 검찰과거사위 2차 재조사 사건으로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이 5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에서 ‘장자연 리스트’ 진상규명과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2009년 3월 7일 배우 장자연씨가 술과 성 접대를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폭행까지 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남기고 삶을 마감했다. 당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대정부 질의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TV 프로그램 등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이름을 거론하며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검찰은 성매매 피의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하는 등 진상 규명과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최근 ‘고 장자연이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국민 청원이 한 달여 만(2018.2.26.~3.28)에 23만5,796명으로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았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일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포함한 용산참사 사건과 정연주 KBS 사장 배임 사건 등 5건을 2차 재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사 개입 의혹이 있고, 사건 진행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며 “9년이 지났지만 장자연씨 죽음의 원인과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권력관계를 악용해 벌어진 성범죄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는 구체적인 접대 내용과 상대까지 포함되어 있었지만 경찰과 검찰은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취재진를 향해  장자연 리스트 관련 언론이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 서 달라는 요구했다.

정미례 미투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일부 언론에서 이 사건을 공소시효 문제로 다루는데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철저하게 재조사하고 여기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순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 부위원장은 “언론사들은 더 이상 ‘○○’ 등으로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장자연 리스트 규명이야 말로 미투 언론의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9년 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 이태봉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처장은 “9년 전 검찰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민들과 단체는 처벌하고 리스트 문건에 나온 가해자들에게는 무혐의 처분을 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기자회견 전문

<기자회견문>

‘장자연 리스트’ 진상규명, 성역 없이 수사하라

4월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2차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2009년 3월 신인배우 장자연 씨는 소속사 대표에 의해 술과 성 접대를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폭행까지 당했음을 폭로하며 삶을 마감했다. 장자연 씨는 문건에서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했고, 심지어 어머니 기일에도 접대에 나섰음을 호소했다. 장 씨의 문건은 추악한 ‘성상납 강요’를 비롯해 힘없는 배우를 죽음으로 몰아간 연예계 비리가 담겨 국민에게 크나 큰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은 흐지부지되었다. 검찰은 성매매 피의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고, 장 씨 소속사 대표 김 모 씨의 강요와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했다. 김 씨는 고작 폭행과 협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장자연 씨가 죽음으로 알리려 했던 진실은 그렇게 덮였다.

한편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거대 족벌 언론의 무소불위 권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대정부 질의에서, 그리고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TV 프로그램에서 조선일보 사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언론계 인사’가 장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추악한 성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법적 처벌은 물론 영원히 언론계에서 퇴출시켜야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줄소송으로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단체와 언론사 대표 등의 입을 틀어막았다. 심지어 다른 언론사에까지 관련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런 유력 언론사의 압박과 언론사의 암묵적 담합에 의해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제대로 여론화되지 못한 측면도 크다.

하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십삼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와 지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미온적이었던 검찰이 재조사에 나서게 됐다. 또한, 최근 <한겨레21>이 당시 의혹을 뒷받침하는 보도를 내놨는데, 이는 더욱 구체적이고 충격적이다. 검․경이 조선일보 사주의 아들 방 모 씨가 2008년 10월 28일 장자연 씨를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꽤 면밀히 조사하고도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때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겨레21>에 따르면 10월 28일은 장자연 씨가 ‘어머니 기일에도 접대에 나섰다’고 한 그날로 방 모 씨가 접대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권력관계를 악용해 벌어진 성범죄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는 구체적인 접대 내용과 상대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경찰과 검찰은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성폭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미투 운동의 물결의 걸맞게 언론은 이번만을 이번 사건을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장 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로 우리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상징한다. 여성 연예인에 대한 인권 침해, ‘성상납’을 매개로 이뤄지는 권력을 향한 추악한 로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평등,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 언론권력의 횡포, 권력을 악용한 우리 사회의 온갖 추악한 행태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2018년 4월 5일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단체 350개, 개인 400명)/언론시민사회단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미디어기독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NCCK언론위원회,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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