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가 EBS 프로그램 중 하나인 <다문화 고부열전>을 모니터한 내용을 전해왔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의 골을 메워가고 ‘역지사지’ 힐링 여행을 마련한다는 기획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회가 거듭되면서 마치 여행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구도가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황 활동가는 갈등에 남편과 시아버지 문제는 거의 나오지 않으며, 며느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분위기, 인권침해적인 상황을 예능적 요소로 만들어 버리는 등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시고 계신가요?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활동가(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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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고부열전> 괜찮으신가요?

 

황소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

 

EBS 홈페이지의 ‘TV 다시보기’ 탭에 가면, 최근 1년, 1개월, 1주일, 하루 간격으로 인기 있는 EBS의 VOD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남편만 믿고 기고만장한 며느리 때문에 기죽은 시어머니’, ‘친정만 챙기는 며느리, 헛돈 쓰지 말라는 시어머니’등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대립구도를 강조하는 제목이 눈에 띈다. 지난 2013년 시작해, 2018년 현재까지 꾸준히 방송되고 있다. <다문화 고부열전>은 명실상부 E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다문화 고부열전>의 시점은 한국의 결혼이주여성을 특별한 존재로 묘사한다. 특히 식구들과 며느리의 고향으로 여행을 가는 설정이 그의 출신지를 강조한다. 사연마다 다르지만 유별난 행동으로 시가 식구들에게 맘고생을 안기는 ‘캐릭터’화 되어있기도 하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은 저마다 며느리(부인)에 대한 지난날의 평가, 앞으로의 바람 등을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한다.

주변 인물들은 며느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동원된 배경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며느리와 시가 사이 존재하는 권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다문화 고부열전>의 각 회당 꼭지에서 볼 수 있듯, 며느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문장과 분위기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연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할 뿐만 아니라, 며느리와 고부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소문’처럼 전달하고, 카메라 뒤에 숨어서 험담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할도 여성의 몫이다. "친구네 가는 거예요? 아이는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같은 말을 해 적극적으로 며느리에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일 배우라는 시어머니, 용돈 달라는 며느리’ 편을 보면, 시부모 가족은 절약을 통해 일어서고, 사업에 성공했으며, 절약하지 않는 며느리 때문에 골치아파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시가에서는 며느리가 분가하기에 어리다는 이유를 들며, 며느리의 자유를 통제한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시가 식구들에게 요리로 ‘점수’ 따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소비되는 문화의 근원은 며느리는 시가의 종이라는 잘못된 인식일 것이다. 외출조차 허락받아야만 하는 마땅한 인권침해가 재미있는 톤의 내레이션이 붙어 예능적인 요소로 소비된다. 가사노동을 ‘도와주려다’ 실수하는 남편을 ‘일 치른다’고 표현하며 남성이 가사노동하는 상황을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로 묘사하기도 한다.

며느리가 친구집에 간다고 말하자, 표정이 굳은 시어머니는 "너 친구네 가면 엄마 우즈베키스탄 안 갈거야" 같은 말로 며느리를 협박한다. 두 사람을 보여주는 장면의 자막은 '두 여자의 싸움' 이다. 더불어 해당 회차에서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가게에서 노동을 해도 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장난스럽게 보여지고, 쇼핑과 친구 만나기, 수다를 좋아하는 여성은 철이없고 어리다는 전형적인 여성혐오가 등장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갈등에서 남편과 시아버지의 문제가 거의 소거되어 있다는 점이다. 종종 돈을 헤프게 쓰는, 역시 철없는 남편이 등장하기는 나타나는 방식은 며느리의 그것과 다르다. ‘남편 챙겨주는 시어머니, 이해 못하는 며느리’ 편에서,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돈을 쓰는 것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임에도, 프로그램의 제목에서는 며느리의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제작자의 시각을 강조한다.

남편이나 시아버지의 문제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시어머니의 꾸짖음이다. "네가 백년묵은 여우면 엄마는 천년묵은 여우거든?", “친구들 만나서 여자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술이나 먹고 하는게 뭐가있어? 쇼핑이나 하고", “휴대폰 어디갔어? 도끼로 부숴버리게” 같은 말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과연 며느리과 시어머니는 대립각이 선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동등한 비교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며느리와 시가 식구들을 둘러싼 ‘일상속의 성차별’도 만연하다. 아들을 낳지 못해 섭섭해 했을 친정 어머니를 회상하며, 아들을 편애했음을 드러내는 가치관이 마땅한 바람으로 포장된다. 남편의 귀가에 대해 불만사항을 말하는 며느리를 ‘아들 기 죽이는’ 여자로 몰아가기도 한다.

<다문화 고부열전>에는 시부모나 남편의 허락없이 외출할 수 없는 사례가 역시나 가족 내에서 있을법한 자연스러운 일로 시청자에게 착시를 주는 방식으로 보여 진다. ‘무단 외출하는 며느리, 무기력증에 빠진 시어머니’ 같은 제목에서 보듯, 며느리의 일상과 의지를 통제하고자 하는 이들이 자주 등장하고,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며느리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문제가 어물쩍 넘어가는 장면도 나온다.

결국 모든 부정적인 상황의 원인은 며느리로 요약된다. 돈 버는 재미에 빠진 며느리'때문에', 무단외출하고 가출한 경험이 있는 며느리 ‘ 때문에’ 놀기 좋아하는 며느리 ‘ 때문에’…. 결국 문제해결은 온데간데 없고, 프로그램은 여행을 통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한 구도를 꾸리고, 실행한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주어져야 할 경제권, 사회권이 남편을 포함한 시가 식구들에게 종속된 상황에서 며느리의 고향에 방문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EBS는 지난 1월 <까칠남녀>의 은하선씨 하차에 이은 조기종영에 항의하는 시민단체에 답변서를 보내오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신장하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겠습니다”, “EBS는 우리 사회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바람직한 공동체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포부를 밝혔다. 과연 <다문화 고부열전>과 같은 성차별적인 프로그램이 장수하고, 성소수자 여성이 일방적으로 퇴출되고 <까칠남녀>가 폐지되는 EBS에서 가능한 계획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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