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뒤집어졌습니다. 통상임금, KTX정리해고, 전교조 법외노조, 통합진보당 판결 등 주요 판결 이면에 사법부 사찰을 비롯해 사법 행정권이 남용됐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법부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과연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 왔을까요?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보도를 보면서 그동안 질문해 오지 않았던 언론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현재 보도를 넘어 이제 잘못된 판결에 따른 피해자들을 만나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활동가(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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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판거래’ 달라진 보도, 반갑지만 씁쓸하다

KTX 승무원의 사망,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사건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내가 가야 됩니까?”

그는 오만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3차 조사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사찰하고 경제·노동·교육 등 분야에서 재판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 입맛에 맞도록 재판을 거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정황까지 나왔지만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결론은 이상했다. 판사들에 대한 성향분석·사찰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었다’, ‘실행이 안됐다’는 논리다. 결국, “고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논란이 커지자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왜 조사를 거부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가야 됩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조사가 1년 넘게 이뤄졌다. 여러 개의 컴퓨터를 흡사 남의 일기장 보듯 완전히 뒤집었다. 그런데도 사안을 밝히지 못했을까? 더 이상 뭐가 밝혀지겠나”라고 덧붙였다.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 정황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판결”이라며 ▲통상임금, ▲국공립대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서도 노동자들이 소급해서 돈을 받을 수는 없도록 막았다. 그 판결로 인해 다수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봤다. “노동 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로는 ▲KTX 승무원의 정리 해고와 ▲철도 노조 파업 사건이 꼽혔다. 해당 판결로 KTX 한 승무원이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여전히 승무원들은 거리를 떠돌고 있다. 대법원은 이 밖에도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을 위한 판결”(▲과거서 국가배상 제한 사건 등), “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법외노조 및 시국선언 사건 등),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원세훈 정치·대선 개입 및 이석기 통합진보당 판결 등)을 적시하며 구체적인 사건 에 대한 판결을 적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사회를 들었다놨다한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그 같은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납득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입으로는 “사법부 독립”을 이야기하며 뒤로는 정권에 불편한 발언을 하는 판사들을 사찰하고 절실함으로 마지막 법원의 문을 두드린 수많은 사람들을 배신하며 ‘법리재판’이 아니라 ‘정치재판’을 해왔던 셈이다.

뉴스가 달라졌다

다행인 것은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결과에 대해 언론들이 매서운 보도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을 둘러싼 급변하는 사태가 가장 큰 비중으로 보도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법원의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 또한 그에 못지않게 다루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최근 ‘뉴스가 달라지긴 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사례였다.

무엇보다 지상파 뉴스들은 생경하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KBS 메인뉴스 <뉴스9>(28일)에서는 대법원 특별조사단 발표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법정책연구원 차성안 판사를 스튜디오에 출연시켰다. 차안성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집중적인 사찰을 받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SBS <8뉴스>(29일)에서는 김승하 KTX 승무원 지부장이 출연했다.1) 그리고 KTX승무원들이 대법원 농성을 한 사건 또한 주요하게 배치됐다. 예전 같았으면 당사자를 출연시키는 것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위반이라는 등의 논리를 댔을 터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결단코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라는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KBS <뉴스9>는 <양승태 입장 표명 ‘재판 거래’ 부인…남는 의문점은?>(1일)2)이라는 리포트를 실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재판 거래’ 의혹에 침묵하는 대법관들…이유는?>(1일) 리포트를 통해 “사안 자체를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을 대법관들”이라며 “지난 2차 조사 때는 사실이 아니라며 반발하더니,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 밖에도 대법원의 ‘셀프조사’의 한계를 짚거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한다.
 


과거, 뉴스는 의심하지 않았고 기자는 질문 하지 않았다

과연 과거였다면 어땠을까? 노동자들의 투쟁은 ‘외면’되거나 혹은 ‘비난’이 대상이 됐을지 모른다. 정부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집단으로 매도했을지 모른다. 조선일보는 <‘판사 블랙리스트’ 괴담 만든 판사들 ‘아니면 그만’인가> 사설(5월28일)3)에서 “판사 블랙리스트를 조사해온 법원이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25일 발표했다. 전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문건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근거 없다고 결론이 난 것”이라며 ‘괴담’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조선일보와 같은 논조의 기자들이 전파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을지 모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안타깝게도 공영방송은 그랬다.

하지만 대법원 행정권 남용 사태 보도를 보면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그 같은 농간을 부리는 동안 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KTX 사건만 보자.

KTX 승무원에 대한 판결은 2015년 2월 26일에 나왔다. KBS <뉴스9>는 당일 <현대차 ‘위장 도급’·코레일 ‘정상 도급’…기준은?>4) 리포트를 통해 “신분은 대기업의 협력업체 소속이지만, 근무는 대기업 안에서 하는 경우, 이게 불법파견은 아닌지 논란이 계속돼 왔다”며 “대법원이 이를 판별하는 세부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법원 판결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MBC <뉴스데스크>는 단신으로 처리했다. SBS <8뉴스>는 당일 KTX 관련 리포트를 싣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후 3월 한 승무원은 ‘세 살 아이에게 빚만 남기고 가서 미안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승무원의 죽음은 당시 제대로 된 조명도 받지 못했다. 비단 KTX 승무원 사건만이 아니다. 한국 보수세력들이 공세를 폈던 전교조와 통합진보당 사건들을 언론들이 어떻게 보도해왔는가. 언론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그렇게 언론은 시민들과 멀어졌다.

그래서 대법원 특별조사단 보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반가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탓하고 싶진 않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기자들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의 답이 바로 이 사건에 있다. 대법원의 사법 행정권 남용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피해자가 있다면 그에 따른 구제가 뒤따라야 한다. 시민들이 보고 싶은 건 그런 내용을 견인하는 보도다. “과거의 보도가 잘못됐다”고 눈물 흘리는 언론인들의 모습이 아닌 질문하는 모습이다.

 

1) 2018.5.29. SBS 8시 뉴스 <김승하 KTX 승무원 지부장 "사건 바로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싸울 것">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779587&plink=THUMB&cooper=SBSNEWSPROGRAM&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Q. 3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승하/KTX 승무원 지부장 : 그 친구 몫까지 끝까지 사건 바로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싸울 것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제까지 정부, 철도 공사, 청와대, 이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항상 듣던 말이 대법원 판결이 난 사안이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말들을 빼놓지 않고 들었습니다. 이 문제 분명히 양승태 대법원장도 책임이 있겠지만, 이 문제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 정부, 철도 공사 모두 책임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 저희의 13년의 세월, 한 친구의 목숨값까지 제대로 처벌받고 죗값 받게 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대법원 판결 달라진다면?

[김승하/KTX 승무원 지부장 : 다시 유니폼을 입고 승객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승무원으로 돌아갈 날을 지금도 꿈꾸고 있습니다. KTX를 볼 때마다 내가 저기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2)<양승태 입장 표명 ‘재판 거래’ 부인…남는 의문점은?>(KBS 뉴스 9 6월1일)

결단코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의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습니다. 통합진보당 소송 관련 문건, '재판장의 잠정적 심증 확인'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재판장에게 전화해 재판 내용을 캐물었다는 겁니다. 특조단이 '사법행정에 의한 재판 개입'이라고 평가한 부분입니다. 청와대와의 이른바 재판거래를 부인했지만...

[양승태/전 대법원장 : "하물며 재판을 무슨 흥정거리 삼아서 재판 방향을 왜곡하고..."]

의심할 만한 대목들이 눈에 띕니다. 전교조 재판 관련 대외비 보고서. 향후 재판 결과에 따른 청와대와 대법원의 이익을 검토하고, 인용 결정을 할 경우 양 측이 윈윈하게 된다고 돼 있습니다.

양 대법원장은 또 KTX 승무원 재판 문건 등은 재판 뒤 작성된 것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만약 그렇다면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상대로 거짓 문건을 만들어 협상하려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판결이 나고 난 뒤에는 그런 해석을 붙여도 되는 것입니까, 대법원이?) ..."]

판사 뒷조사에 대해선 불이익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당사자들은 반발합니다.

[차성안/판사/지난달 28일/KBS뉴스9 :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런 단체들을 축소 해체하려고 했던 것, 그 자체가 심각한 불이익..."]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재판 같은 석연치 않은 재판 지연 등 오늘 회견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대목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3)<[사설] '판사 블랙리스트' 괴담 만든 판사들 '아니면 그만'인가>조선일보 사설(5.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7/2018052702659.html

4)기업체 불법 파견 하도급 기준은?(2015.2.26. KBS 뉴스9)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026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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