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의 ‘블랙 위크엔드’(경향신문), ‘먹통’된 일상…IT 코리아의 통신 재난(서울신문), 통신망 화재 무방비…구멍 뚫린 ‘IT 코리아’(세계일보), 내 삶이 멈췄다, 초연결사회 공포(중앙일보), 화재 1건에 ‘디지털 원시시대’ 돌아간 IT 대한민국(한겨레신문), 지난 26일 주요 신문 1면 제목들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언론 어때 칼럼’에서 말합니다. 통신 공공성 확보 문제를 제기해야 할 적기로 보상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활동가(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가 <인권>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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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통신대란: 언론 통신 공공성에 주목해야

 

박장준(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KT건물 지하에서 불이 났다. 스마트폰, 노트북 그리고 편의점과 식당 등의 ATM도 먹통이 됐다. KBS의 청각장애인용 자막방송도 5시간 동안 중단됐다.1) KT 가입자들은 재난 안내 문자도 받지 못했다. 경찰의 112 시스템도 일부 멈췄다. 한국은 디지털 재난에 극도로 취약한 ‘IT 후진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
 

언론은 놀라우리만큼 집중해 보도를 내보냈다. KT는 사고 당일부터 “파격적 보상”을 약속하며 여론을 진화하려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은 자영업자의 피해와 일반 가입자의 불만, 통신 인프라의 문제, 정부 규제의 공백에 대한 지적까지 쏟아냈다.

일단 이번 사건을 통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려졌다. 정리를 하면 아래와 같다.

1. 한 통신사로 유선과 무선을 결합하면 ‘스마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해진다.

2. 정부는 통신국사를 A부터 D까지 네 등급으로 나눠 관리한다. D등급 국사는 백업망을 마련할 이유가 없다.

3. KT가 관리하는 주요국사 56개 중 D등급은 무려 27개다.

4. 통신구 길이가 500m 미만인 경우, 사업자에게 소방방재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

5. 서울 한복판 5개구의 통신을 책임지는 아현 지사에 KT 간부급 관리자는 없고, 직원만 2명이 있다.2)

6. 현장에서 통신망을 복구하는 노동자들은 KT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이번 사고와 문제를 짚어내는 언론 보도를 정리해 보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통신은 정부와 사업자 그리고 가입자가 비용과 혜택만을 두고 밀고 당기는 부문이 아니다. 공공성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규제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2. 디지털 재난이 발생하면 중증장애인과 독거노인은 세상과 단절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3. 개별 통신국사에 대한 시설규제와 사업자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4. 통신사업자는 공사부터 유지관리까지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충분한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

5. 통신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KT 지배구조를 재 논의해야 한다.

6. 백업이 중요하다.

지금 기사 쓸 것은 넘쳐난다. 그래도 집중해야 한다. 언론은 ‘보상수준’만을 쟁점으로 봐서는 안 되며, 앞서 거론한 ‘과제들’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대한 통신재벌이자 광고주인 KT의 통신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하게 제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다. 통신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KT, SK, LG는 독과점 구조 속에서 영업이익을 유지하는 수준에서만 경쟁한다. 거액을 들여 주파수와 가입자를 늘려왔다(사실상 사왔다). 망과 기지국을 만드는 등 이 같은 투자가 끝난 뒤 사업자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회수’로 주주에 배당할 돈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백업, 유지관리, 안전, 노동 따위는 ‘비용 절감’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게 독과점의 비법이고 이동통신 3사가 재벌이 된 비결이다.

백업, 유지 관리, 안전, 노동을 ‘비용’의 관점이 아닌 ‘권리’이자 ‘책임’으로 바라보게 해야 한다. 이것이 ‘죽음의 기업’ KT3)를 되살리는 길이고, ‘통신 공공성’을 강화하는 가장 어렵지만 유일한 비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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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디어오늘 11월 27일자 <장애인 자막 5시간 전국 블랙아웃, 방통위 몰랐다

지난 24일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59분까지 KBS1, KBS2 채널에 5시간 동안 장애인용 폐쇄자막 송출이 중단됐다. 폐쇄자막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으로 방송의 음성을 문자로 내보내는 서비스다. 모든 시청자에게 보이는 일반 자막과 달리 시청자가 시청을 원하는 경우에만 자막이 뜬다.

KBS와 시청자미디어재단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청각장애인용 폐쇄자막은 속기 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KBS1와 KBS2 채널을 담당하는 속기업체는 KT망을 쓰는데, 이 지역에서 KT아현지사 화재 사고로 통신이 중단돼 자막을 KBS에 보내지 못했다. 

2)한겨레 11월 28일자 10면 <“통신선 새로 깔 KT 정직원은 없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케이티는 국사만 줄이지 않았다. 인력 감축도 함께 진행했다. 케이티 사업보고서를 보면, 민영화 직전인 2001년 12월 기준 직원 수는 4만4094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는 2만3817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중에는 통신선로를 까는 직원도 포함됐다. 그런 이유로, 현재 불이 난 아현국사 현장에서 통신선로를 까는 작업은 케이티 직원들이 아니라 외주업체 직원들이 전담하고 있다. 1100여명의 화재 복구 작업자들 가운데 케이블 포설 등 현장 복구를 하고 있는 작업자 중에는 케이티 정직원들이 없다는 얘기다. 

3)미디어오늘 2013년 4월 7일자 <[KT 집중해부 시리즈 ①] KT는 어떻게 ‘죽음의 기업’이 됐나>

인권센터와 KT새노조 등은 이 같은 죽음의 배경에 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노조 무력화, 2002년 단행된 민영화, 2006년부터 시작한 CP비밀퇴출프로그램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노조가 무력화되면서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혹여나 문제제기를 하는 노동자가 부실인력으로 지목당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조직 내에서 경쟁이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C Player’, 부진인력이 되지 않기 위해 쪼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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