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이 매긴 정부 3년 성적표, ‘실망스러워’ 

대선공약 ‘지역언론 활성화’에도 이행률은 ‘0’ 

지역 신문・방송 고사(枯死) 직전 상태 내몰려 

 

지난 5월 10일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촛불의 염원을 항상 가슴에 담고 국정을 운영했다”며 현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재확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에 나선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을까. 2016년 가을부터 타오른 촛불은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이 쌓아 올린 적폐의 청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사법개혁과 함께 언론과 노동의 개혁을 주문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19대 대선 보름 전인 2017년 4월 24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와 정책협약을 맺고 “상호 협의를 통해 언론적폐 청산과 미디어 다양성 강화가 새로운 민주주의 건설의 핵심 과제임”과 동시에 이후 탄생할 ‘촛불정부’의 정책적 과제임에 합의했다. 

 

▲ 2017년 4월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더불어 민주당 중앙당 4층 대회의실에서 문재인 당시 제19대 대통령 후보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정책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언론노조는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언론적폐 청산과 미디어 다양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정책 협약의 체결을 제안하고, 후에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촬영=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언론・노동 정책의 성적표는 어떨까. 언론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적폐 청산과 언론 신뢰 회복을 위해 투쟁을 벌인 지난 3년 동안 정부와 언론・노동계는 ‘개혁’이라는 두 글자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호흡을 맞춰왔을까.

 

<언론노보>는 1만 5,000여 언론노조 조합원을 업종별로 대표하는 협의회 의장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한 게 없다”, “실망스럽다”는 대답을 내놨다. 

 

이들의 답변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정부가 ‘지역언론 활성화’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사이 지역언론은 고사(枯死) 직전의 상황에 처했다. 신문 분야는 이렇다 할 지원정책 하나 없는 가운데서 종사자들이 힘겹게 추진했던 신문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것으로 전망 된다. 방송 분야에선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종편에 대한 특혜 환수와 공영언론에 대한 시민 참여를 약속했지만 실천에 옮긴 것이 전무하다는 평가다. 가뜩이나 열악한 출판 시장과 관련해서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에 <언론노보>는 3회에 걸쳐 문재인 정부 3년간의 언론・노동 정책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각과 실태, 앞으로의 방향 등을 짚어볼 예정이다. 첫 번째로 벼랑 끝에 내몰린 지역언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역신문은ᅠ굶어죽기 직전…“정부 평가? 낙제점도 안 되는 ‘마이너스 점수’”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론노조와 합의한 정책협약서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 다양성의 확보는 지역성의 강화에서 시작된다. 지역신문의 안정된 운영을 위해 지역신문발전법을 개정하고, 부당하게 지역으로 시장을 넓히는 중앙신문의 확대를 제재한다.” (7. 미디어 지역 다양성 강화) 

 

“방송통신발전기금, 지역신문발전기금 등 매체별로 분리된 공적기금은 미디어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에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분리된 각종 미디어 관련 기금을 미디어다양성 기금으로 통합하고, 미디어 지역성 강화에 중점을 둬 운영한다.” (8. 미디어 다양성 보장을 위한 공적 기금 신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역분권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약집에는 지역민주주의 정립의 필수조건인 ‘지역언론의 활성화’가 기재돼 있다. 하지만 정부를 바라보는 지역언론 종사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언론노조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전대식 의장(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은 정부의 언론정책을 “실망스럽다. 점수로 표현하자면 낙제에도 모자란 마이너스 점수”라고 평가했다.

 

전대식 의장은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이하 ‘지발위’)의 기금 고갈을 언급하며, 집권하면 기금을 초기 때로 돌리겠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발위 기금은 노무현 정부에서 연 200억원으로 조성된 후 축소만을 거듭해 왔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연 80억원으로 줄어들었고, 문재인 정부도 80억원의 기금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초기 때로 돌리겠다’고 말한 것의 의미는 연 200억원 규모로 되돌리겠다는 것이겠으나, 공약은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역신문에 대한 지발위 기금 지원의 근거가 되는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하 '지역신문법')은 2022년 일몰 예정인 한시법이다. 언론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누차 ‘상시법 전환’을 주장하고 있으나, 문 대통령은 법의 일몰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은 적이 없다. 

 

전 의장은 “지역언론에 대한 지원정책이 전무한 것에 더해 거대 포털이 지역언론을 홀대함으로써 지역신문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실무부서인 문체부는 관심도 없고 문 대통령은 정책을 만들 의지조차 없어 보여, 남은 2년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2019년 5월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산하 지역 신문・방송의 노동조합 대표자 및 조합원들이 경기도 분당 네이버 본사 앞에서 '지역언론 차별 철폐'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여는 모습. 네이버는 같은 해 4월 일방적으로 모바일 웹페이지 첫 화면에서 지역언론 전체를 배제함으로써 지역언론 전체의 생존권을 위협한 바 있다. (촬영=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네이버 등의 거대 포털의 전횡도 지역언론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9년 4월 모바일 페이지 첫 화면에서 지역신문을 일방적으로 제외했다. 포털을 통한 뉴스의 소비가 일반화 돼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의 이같은 조치는 지역신문에 내려진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지역신문 종사자들은 노사 할 것 없이 일제히 반발했다. 

 

이후 이어진 언론노조 지역신문노조협의회의 대(對) 네이버 투쟁에 많은 언론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해 원상 복구를 촉구했다. 스마트폰 위치 확인 기능을 이용한 ‘사용자 위치 기반 뉴스 서비스’를 시행할 것도 촉구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 있는 네이버 사용자에겐 경기지역 신문의 기사도 메인 페이지에 함께 노출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현재 네이버 모바일 페이지 첫 화면에서는 부산일보, 매일신문, 강원일보 등 3개 지역지만이 재입점해 있는 상황이다. ‘사용자 위치 기반 뉴스 서비스’의 법제화를 위한 법안은 20대 국회의 종료와 함께 폐기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3년간 약속을 저버린 사이 지역신문은 ‘시계제로’의 상황에 처해 있다. 

 

◆손 놓은 정부에 벼랑 끝 몰리는 지역방송 …“법・제도 등 지원정책 시급” 

 

사정은 지역방송도 비슷하다. 정부가 출범 초기에 내놓은 ‘지역방송 활성화’의 장밋빛 전망은 색이 바랜지 오래다. 언론노조 지역민영방송노조협의회 김상우 의장(언론노조 KNN지부장)은 “지금의 현실은 오히려 ‘지역방송 죽이기’에 가깝다”는 입장을 내놨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역분권의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에 지역방송 종사자들의 기대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지역분권과 지역민주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만큼 지역방송을 ‘키워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을 통한 지역방송의 지원금은 이명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똑같은 규모인 41억원에 그쳤다. 2018년과 2019년도 방송통신발전기금 예산의 전체 편성액이 각각 1,119억원, 1,205억원인데 그 30분의 1 수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마저도ᅠ중소방송사를 포함한 43개 지역방송사가 나누어 받는 구조라 1개 방송사에 1억원도 안 되는 지원금이 배분되는 셈이다. 

 

지역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는 사이 지역 방송사들의 광고매출은 한 해가 다르게 급감하고 있다. 방발기금의 지역방송 지원금이 동결되는 와중에 상황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지역방송 종사자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지역방송 종사자들도 ‘지역방송의 신뢰 회복’, ‘진정한 지역주민을 위한 방송’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정부 출범 후 3년이 지난 지금 자신들의 투쟁을 ‘반쪽짜리 투쟁’이라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지역방송의 지속가능성이 크게 위협 받고 있어, 내부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오로지 ‘권력 다툼’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상우 의장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지역에 산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살 듯이 언론정책 역시 중앙집중식이 아닌 지역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특히 열악한 지역의 방송을 우선 배려하는 지원정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1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 M&A시대 지역콘텐츠 활성화 방안 모색 정책토론회’ 현장.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 지역 콘텐츠를 지키고 활성화하기 위해선 방송통신 M&A의 가장 큰 수혜자인 IPTV 사업자들에게 실질적인 투자계획 수립과 지역콘텐츠진흥분담금 출연 등 사회적 책무를 지우는 방안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촬영=조정훈 언론노보 기자)

지역방송은 여전히 활로를 모색 중이다. 지난 1월, 언론노조 산하 지역방송 조직의 대표자들은 지역방송 콘텐츠 진흥을 위해 IPTV 사업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지역방송의 콘텐츠가 올바른 지역여론 형성을 위한 공공재적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방송통신 M&A의 가장 큰 수혜자인 IPTV 사업자들이 실질적인 투자계획을 수립함과 동시에 지역콘텐츠진흥분담금을 출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점 상태인 한국의 방송통신 시장에서는 공공성을 도외시하는 거대 사업자들의 행태가 매번 도마에 오른다. 거대 사업자들이 공격적인 투자와 선정적인 콘텐츠로 배를 불리는 동안 여론의 다양성을 책임지는 지역의 소규모 방송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반면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의 경우 정부가 거대 미디어 사업자들로 하여금 대규모 지원금을 출연토록 하거나 여론 다양성을 실현할 중소 방송 사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촘촘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지역방송은 쓰러져 가는데 통신재벌들만 배를 불리도록 둬서는 지역민주주의까지 위협 받는다’는 것이 지역방송 노조 대표자들의 중론이다.

 

지역방송 노조 대표자들의 의견에 방송통신위원회는 ‘뒷받침 할 제도가 없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역언론・지역방송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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