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신문 진흥 정책에는 “답이 없다” 한 목소리

정책 뒷받침 부족한 지상파 방송은 ‘생존 가능성 불투명’

지속된 출판시장 불황에 “생존의 문제…근로기준법 위반도” 

 

지난 5월 10일은ᅠ문재인ᅠ정부가ᅠ출범한ᅠ지 3년이ᅠ되는ᅠ날이었다. 문재인ᅠ대통령은ᅠ취임 3주년ᅠ특별연설에서 "촛불의ᅠ염원을ᅠ항상ᅠ가슴에ᅠ담고ᅠ국정을ᅠ운영했다"며ᅠ현ᅠ정부가ᅠ촛불혁명으로ᅠ탄생한ᅠ정부임을ᅠ재확인했다. 

3년이ᅠ지난ᅠ지금, 정부의ᅠ언론・노동ᅠ정책의ᅠ성적표는ᅠ어떨까. 언론노동자들이ᅠ스스로ᅠ일어나ᅠ적폐ᅠ청산과ᅠ언론ᅠ신뢰ᅠ회복을ᅠ위해ᅠ투쟁을ᅠ벌인ᅠ지난 3년ᅠ동안ᅠ정부와ᅠ언론・노동계는 '개혁'이라는ᅠ두ᅠ글자를ᅠ완성하기ᅠ위해ᅠ얼마나ᅠ호흡을ᅠ맞춰왔을까.

<언론노보>는 3회에 걸쳐 문재인 정부 3년 간의 언론・노동 정책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각과 실태, 앞으로의 방향 등을 짚어 볼 예정이다. 그 두 번째 순서로 위기에 봉착한 전통적 미디어(신문, 방송, 출판)를 짚어본다.

 

◆ 정부의 신문 지원 정책은 ‘오리무중…너무나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유튜브・소셜미디어・포털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각축장이 된 지 오래지만, 신문과 방송, 출판 등 전통적 미디어는 여전히 ‘등대’ 같은 존재다.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시장 속에서 검증 가능한 뉴스를 생산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이 가장 쉽고 가깝게 마주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제도와 정책이 ‘여론 다양성’ 보장을 위해 이들 전통적 미디어에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것도 ‘바른 뉴스’의 유통을 보장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작동한다.

 

언론노조는 2019년 9월 말 진행한 해외현장조사사업에서 유럽 선진국들의 전통적 미디어 지원 사업 역시 같은 전제 하에 시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뉴미디어가 득세한 미디어 시장 속에서도 신문・방송・출판산업의 진흥을 여론 다양성 보장의 필요조건으로 여기며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언론 진흥 정책은 ‘그걸 요즘 누가 보느냐’가 아니라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럽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의 언론 진흥 정책을 비교할 때, 한국이 가장 뒤처져 있는 부문 중의 하나가 바로 신문 진흥 정책이다. 유럽의 ‘배달 지원’, ‘구독자 세제 지원’, ‘신문산업 현대화 지원’ 등 구체적인 지원 정책들과 비교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의 신문 진흥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 2019년 11월 28일 언론노조는 국회 정론관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신문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개정안에는 편집권 독립과 언론의 공적 기능을 명시하는 조항 외에도 신문 진흥 정책 등이 포함됐으나, 20대 국회의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촬영=연현진 언론노보 기자)

언론노조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이하 ‘전신노협’) 한대광 의장(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장)은 날로 어려워지는 신문산업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함에 “이제 거의 포기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 의장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정책을 평가하는 것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떠한 언론정책을 갖고 있는지 밝혀 달라’고 묻고 싶다”고 밝혔다. 평가할 정책이 존재하는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신문 산업과 관련한 예산을 배정받아 업무를 추진하는 기관은 문체부의 산하기관인 언론진흥재단이 유일하다. 신문산업 종사자들이 문체부와 언론진흥재단에 ‘정부(문체부) 차원에서 현실성 있는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검토 중”이라는 똑같은 답변뿐이라는 게 한 의장의 말이다.

 

한 의장은 “전신노협이 신문 유통시장의 정상화, 신문 용지의 안정적 공급 대책 마련, 신문 구독료 세액공제 등도 반복해서 요구했지만 정부는 ‘법도 미비하고 예산도 없다’는 말로 빠져나가기만 한다”며 “먼 유럽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현 정부의 태도는 너무나 안이하고 무책임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문 산업 종사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의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개정안에는 편집권 독립과 언론의 공적 기능을 명시하는 조항과 함께 ▲신문산업의 진흥을 위해 문체부 장관이 3년마다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ᅠ▲신문산업 지원을 위해 세제 및 금융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의 마련ᅠ▲언론진흥기금의 관리・운용 주체를 문체부 장관으로 변경 등의 신문 진흥에 관한 정책 등이 포함됐으나, 논의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의장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정책은 이제 21대 국회 개원과 맞춰 마지막 시험대에 서 있다”며 “이명박근혜 정권과 마찬가지로 언론계 현안을 외면한다면 언론개혁 점수는 ‘0점’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1대 국회는 논의조차 제대로 못한 신문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문체부는 수년째 요구해 온 정책 과제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상파 방송사 생존 가능성 날로 떨어져…“정부의 실천적 조치 이뤄져야”

 

방송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신문의 현재는 방송의 미래’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플랫폼의 홍수 속에 더 이상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TV 시청자는 각자가 선호하는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로 바뀌었고, 한때 한국사회 여론지형을 결정 짓던 지상파 방송의 뉴스는 차츰 인터넷 뉴스와 소셜미디어, 더 나아가 유튜브 개인방송에 그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

 

‘예능・드라마로 돈을 벌어 뉴스・시사・교양 프로그램에 투입한다’는 과거 지상파 방송이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공적 자산인 지상파를 사용하는 만큼 수익만을 좇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 등의 유료 플랫폼들이 광고 없이 ‘깔끔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틈바구니에서는 그러기도 쉽지 않다. 행여 예능・드라마에 간접광고(PPL)라도 티 나게 배치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그 와중에 지상파 방송사들의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KBS는 올해 1,200억 정도의 적자가 예상되며, MBC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광고수익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공적 자산인 지상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방송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이 정권에 장악 당해 ‘공공의 적’이 됐던 과거와 결별하고, 공공재로서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5월 6일 방송독립시민행동은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BS의 최대주주 태영그룹의 인적분할에 따른 사전승인 심사에서 방통위의 사전승인 거부를 촉구하고 나섰다. 방송독립시민행동과 언론노조 SBS본부는 지상파 방송 SBS에 대한 태영건설 윤석민 회장 일가의 지배력 강화가 결과적으로 지상파 방송인 SBS의 공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SBS가 사익추구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촬영=임학현 언론노보 기자)

언론노조 방송노조협의회 오동운 의장(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현 집권여당에 힘을 몰아준 국민의 뜻은 두려움 없는 개혁의 실천”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이끌어 냈던 국민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언론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에 있어서 뚜렷한 성과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정부의 언론개혁과 관련된 기조에 대해 “종편에 대한 특혜 환수 및 공영언론의 시민참여 등 명확한 공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천에 옮긴 것은 전무하다”며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이던 2017년 언론노조와 맺은 정책협약에서 “종편의 특혜 철폐 또한 반드시 청산돼야 할 언론 적폐”임에 합의했다. 또한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막은 관련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한 노력ᅠ▲미디어개혁위원회 설치와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개편ᅠ▲공영방송에 대한 차별화 된 재허가 제도의 도입과 공영방송 이사회의 시청자 대표 기구화(化)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의 위상과 권한 강화ᅠ▲지역 공영방송 및 MBC 자회사의 사장 선임 절차의 개혁 및 자율성 보장 방안 모색ᅠ▲방송통신발전기금을 포함한 공적기금의 ‘미디어다양성 기금’으로의 통합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중 이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에 대해 오 의장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정부가 개혁을 향한 속도와 동력뿐만 아니라 그 방향성까지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언론개혁은 남은 임기 내에 반드시 시작해야 할 과제"라 못 박으면서 "언론의 건강성 회복을 위한 시민참여의 확대 방안과 미디어 공공성 강화 등을 위한 실천적인 조치들이 이뤄지길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 지속된 출판 불황에도 정부는 대책 없어…“국가 감시망 밖에 놓여있다”

출판시장의 불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 보수정권 하에서는 ‘출판계 블랙리스트’의 이름으로ᅠ세종도서(정부가 전국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할 우수 도서를 선정, 종당 1,000만원 이내로 구매하는 출판지원사업) 등의 정부지원책도 정상적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2014년 도입된 개정 도서정가제 역시 도서의 유통과정 개선과 출판산업 진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는다. 지식산업의 근간이 되는 출판산업이 가격경쟁 등의 시장논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한다는 정책의 취지는 좋으나,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도서 구매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의 불황에 출판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법을 하회하는 수준으로 나빠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박주용 의장(언론노조 창비지부장)은 “회사가 돈을 못 벌어 월급을 올려줄 수는 없다고 해도,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즐비한 출판사들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전했다.  

 

대부분이 50인 이하 사업장인 출판업체들의 사정을 감안하면, 작은 회사들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권 침해의 정도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의장에 따르면, 정부가 출판노동자들의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정책은 2018년부터 세종도서 지원사업에 임금체불 사업장을 배제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 의장은 “중소기업 사업주의 ‘갑질’은 우리 사회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면서 “노동법의 감시가 지금보다 더 섬세하게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찾아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종도서 등 공적자금 지원의 배제 사유를 임금체불에서 근로기준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사유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2017년 1월 12일 언론노조는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출판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집행한 박근혜 정권 관계자의 처벌을 촉구했다. 같은 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출판계 블랙리스트'라는 적폐는 청산됐지만, 출판산업의 활로를 마련할 정부의 진흥정책 마련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촬영=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세종도서 외에 사실상 전무한 정부의 출판산업 진흥정책 역시 조속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박 의장은 “교육・학술・예술정책과 연계해 출판을 진흥할 수 있는 문화정책의 수립이 시급하다”면서 “영상, 게임, 케이팝(K-pop)만이 콘텐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행 도서정가제는 점검이 필요하고 도서 유통구조는 개선이 절실하다”며 “출판사, 출판노동자, 대형서점, 인터넷서점, 소형서점, 도매상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더 나은 출판환경을 위해 토론할 수 있는 공공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하며, “도서관 예산을 확대하고 운영을 점검하는 식의 접근도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 주요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공공대출권’(공공도서관에서 책이 대여되면서 잃게 된 판매 기회만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을 논의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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