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P기자(35)는 올해도 연봉봉투를 받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는 시험을 치렀다. 객관식·주관식 10여개 문항의 시험지에는 '1년 동안 무엇을 잘했고, 못했으며, 얼마쯤 받으면 적당한가' 따위의 질문이 담겨있었다. P기자는 기사를 몇 건 썼고 특종·낙종은 안 했는지, 지각이나 무단결근은 없었는지, 1년의 반성을 적어 제출했다.
답안은 부장에게 넘겨져 분기마다 매겨진 개개인 인사고과와 사견을 곁들여 국장에게 보내진다. 다시 국장은 평소생각을 가필하여 임금인상·삭감·동결·해약 등을 정하고는 연봉을 책정해 경리부서로 넘긴다. 한차례 홍역이 끝나면 경리부에서 1명씩 불러 연봉금액이 적힌 봉투를 나눠준다.
지난해 3월 창간한 스포츠투데이는 최근 두번째 계약을 체결했다. P기자는 "연봉제는 통상 50% 동결, 25% 인상, 25%는 삭감하는 줄 알고 있으나 아직 초기여서 삭감이 많지는 않은 것 같고 일부는 이의신청을 한 눈치더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3명의 기자가 떠났는데 연봉에 불만을 품고 나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각자의 연봉금액은 철저한 비밀 속에 감춰져 있어 증감여부를 서로 모른다.
연봉계약제는 매년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해고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부장과 국장이 부하 직원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권의 붕괴는 당연하다. B기자(36)는 "국장 등 간부진의 연봉은 사장이 결정짓기 때문에 조직전체가 사장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기자라기보다 샐러리맨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B기자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문제를 예로 들며 저항할 수 없는 편집국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젊은 기자들은 선수협 쪽 입장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려는 반면, 간부들은 구단주와의 관계, 광고문제 등을 이유로 축소왜곡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또 국장의 의도에 따라 특정 인물을 화려하게 보도하거나, 연예인 등의 비위사실도 의도적으로 크거나 작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선후배 사이의 끈끈함은 찾아볼 수 없다. 저녁 술자리는 가벼운 한잔으로 끝나고 연봉에 대한 침묵은 불문율이다. 각자 한 건을 찾아 헤매며 정보의 공유도 이뤄지지 않아 팀 플레이가 어렵다고 B기자는 전했다.
여기에 노동조합이 끼어 들 틈은 없다. 노조는 물론 그 전 단계인 협의체도 없다. 한 사원은 "그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매일 낮 12시 국민일보의 집회를 지켜보고는 "우리가 노조 만들면 작살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학 때 시위하는 친구들을 외면한 채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P기자는 "임금을 깍이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칙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비겁한 기자로 전락하면 결국 조직 스스로 자정작용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그는 "연봉제가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기자의 인간적 측면을 황폐화시키며, 그것은 어떤 장점으로도 결코 보상할 수 없는 폐해"라고 덧붙였다.


/ 언론노보 279호(2000.4.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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