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을 추진하며

사회개혁의 시발점은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

우렁찬 노동의 연대

언론산별노조의 건설이 시작이다


자본중심의 사회에서 한없이 작아만 가는 우리네 처지를 보고 복받쳐 오르는 울분을 가누기조차 힘에 겹다. 막가파 자본의 횡포에 맞서 복도 구석에 앉아 있는 단위노조 위원장의 모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동병상련이라 가끔 모여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단결투쟁을 외쳐보지만 돌아와 느끼는 단위노조 사무실은 밀려오는 허전함에 어쩔 수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전화벨이 울린다. 받기가 두렵다.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모회사, 어느 부서가 분사됐다거나 자본의 논리에 밀려 연봉제실시, 아웃소싱 됐다는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얘기뿐이다. 또 다음은 어디 차례인가 하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지난 광풍세월에 맨몸으로 부딪치다 스러져간 동료 선배들의 얼굴이 하얀 사무실벽 곳곳에서 환영처럼 움직인다.
산별노조… 전국언론미디어노동조합…
어두운 현실에 새로운 작은 희망은 없을까? 어려운 조직논리는 잠시 뒤로하자. 우선 하나로 연대하는 것이 급한 일이다. 모여서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용기가 없어 가지 못했던 길이 보일 것이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가다보면 생각하지 않았던 원군들도 있을 것이다. 그 길이 정의롭다면 같이 가는 식구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 산별건설은 모래알같은 우리네 현실에서 대안으로 유일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무차별적 경쟁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의 확산과 최소한의 염치와 품위도 없이 이익을 쫓아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자본 연합의 거대한 힘은 우리가 추구하고 지켜나가야 할 사회평등과 사랑의 정신을 무참하게 짓밟으며, 사랑과 평등은 사회구성원간의 협력과 나눔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고 경쟁과 효율성논리에 적응하여 이겨낸 소수 승자에 의하여 배풀어지는 것이라 강조하면서 우리에게 추악한 경쟁으로 나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언론계도 노동자의 신성한 노동이 자본의 험악한 싸움에 내 몰려 자사이기주의라는 불명예까지 뒤집어 쓴 채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미 자본의 비열한 승리를 자신의 승리인양 착각하고 동료를 밟고 서서 자랑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지금은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책임을 다해야 할 때이다. 사회운동의 완성은 평등과 사랑이 사회정의로서 자리잡아야 가능하다. 아직도 이렇게 되기에는 길은 멀고 험하다.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개혁을 위하여 할 일은 많고, 지금 우리에게는 힘이 없다. 힘을 모아야 한다. 작은 힘이 모여 정치적, 사회적으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큰 힘으로 발전할 때 사회개혁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회개혁의 시발점은 합리적 진보세력이 정치세력화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시발점은 노동자의 연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실천하는 첫걸음이 산별노조의 건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산별노조건설은 사회의 평등과 사랑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고, 특히 언론노련은 이런 면에서 각별한 의미와 책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수많은 이유를 들며 산별노조건설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산별을 할 수밖에 없는 딱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 땅의 노동자의 처지는 비참하다는 것이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금은 산별노조건설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강성남 서신노협 의장
(대한매일 위원장)


/ 언론노보 280호(2000.5.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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