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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 평전>

세상을 바꾸고 서른 아홉에 떠난 두 혁명가


"나는 홀로 서있는 나무를 숭배한다. 그들은 마치 고독한 사람들과 같다. 시련 때문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기에 고독한 사람들 말이다."헤르만 헤세가 에세이집 <나무들>에서 한 말이다. "시련 때문에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위대하기에 고독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의 삶은 어떤 문학작품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치열하게 살아간 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요즘 두 권의 책을 학창시절처럼 설레며 읽었다. 하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자서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언론인 장 코르미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이다. 킹 목사는 1929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흑인민권운동의 아버지인 킹 목사는 비폭력 저항주의를, 중남미 민족해방운동의 상징인 게바라는 무장투쟁노선을 택했지만, 두 사람의 삶에는 노선 차이보다 더 많은 공통분모가 자리하고 있다. 킹은 목사로서 게바라는 의사로서 얼마든지 안락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안락한 길을 버리고 좁고 험난한 길을 자청해 걸어갔다.
킹 목사는 온갖 테러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흑인들에게 "백인 차별주의자에 대해 증오를 품지 말라"고 외치다 39살에 백색테러분자에게 암살당했다.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상대적으로 평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아프리카 콩고와 볼리비아의 밀림으로 총을 들고 들어갔다. 그 역시 39살에 체포당해 볼리비아 군에게 처형당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연령대 이상의 공통점이 있다. 우선 킹 목사는 적대자조차 감싸안을 비전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특히 1963년 25만의 군중이 운집한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집회에서 그가 행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연설은 흑인민권운동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는 꿈입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독특한 반복어법으로 쉽고 명쾌하면서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연설은 인종주의자들조차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인기가 폭락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대중스타처럼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원한 청춘 게바라는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생사의 경계에 놓인 전장에서 괴테를 읽었던 고독한 사내였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다가 파괴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을 묶어주는 가장 큰 공통분모는 결국 자신을 넘어서려 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나 또한 니체를 따라, 자신을 넘어서려다 파괴당하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쳐야 했던 사람을 사랑한다.

이상수 한겨레신문 기자



/ 언론노보 280호(2000.5.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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