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권호경 사장

끝이 보인다



CBS 노조가 '권호경 사장 퇴진을 통한 CBS 살리기 운동'에 들어간지 어느덧 50여일이 됐다. 조합원 집회나 파업이라는 기존의 운동방식을 동원하지 않고 '문필(文筆)투쟁' '사이버노동운동'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다 보니 어려움도 없진 않았지만, '펜이 칼보다 강함'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노조가 새해 들어 돌연히 '권호경 사장 퇴진운동'에 들어가게 된 데는 권호경 사장이 집권여당의 실력자에게 보낸 축하 화분 하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권사장은 지난 1월 22일 여당의 신임 당직자에게 축하 화분을 보내면서 "축 총선 승리"라고 써 보냈다. 그리고 이 화분을 찍은 사진이 1월 24일자 한겨레신문에 그대로 보도됐다.
노조는 권사장에게 "이같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CBS 직원들 뿐만 아니라 애청자와 국민들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언제나 불편부당하고 공명정대한 입장에 서 있어야 할 언론사의 사장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을 본연의 사명으로 삼아야 할 언론사의 사장이 어느 한 정파에 기운 듯한 처신을 함으로써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또 권사장에게 사과와 함께 CBS를 즉각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46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CBS는 오로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정직함과 공정함을 생명으로 삼아왔는데 잘못 만난 사장으로 인해 이같은 명예와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노조가 권사장에게 퇴진을 요구한 것은 이 하나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권사장은 지난 94년 CBS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끊임없이 정치권 줄대기를 시도해왔고 정치권력에 대한 굴종과 굴신으로 CBS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노조는 권사장의 이같은 잘못된 행적을 하나하나 폭로해 왔다. 기자들을 동원한 아들 결혼식 청첩장 돌리기,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주기적인 정치후원금 제공,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30년 동안 이어져온 CBS의 대표적 비판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고 한국교계와 민주세력들의 뜻에 반하는 대북정책을 건의한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권사장의 이같은 과거행적이 낱낱이 공개되자 노조 뿐만아니라 부장급 간부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CBS 부장급 간부 9명은 3월 11일 모임을 가진 뒤 호소문(현 CBS 사태에 대한 우리의 호소)을 통해 "권호경 사장의 용퇴 만이 현 사태 해결의 유일한 방안"이라며 권사장의 퇴진을 공식요구했다. 이후 4명의 부장급 간부가 서명에 동참했다.
권사장은 직원들의 퇴진압력이 갈수록 거세지자 자신은 한국교계가 임명해준 사람인 만큼 한국교계가 물러나라고 하기 전까지는 CBS를 떠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권사장의 이같은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버티기 행각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다. CBS 재단이사회가 16일 권사장 문제를 다루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노조는 대책위원회에 큰 기대는 않고 있지만 권사장과 재단이사회가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에서 대책위를 구성하고 나왔다는 점에서 노조에 불리한 흐름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 권사장의 끝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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