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육아휴직 이상하세요?

두 달 난 아이 기저귀 빨때 난 행복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난 둘째딸 지해는 이제 사람을 알아 본다. 눈을 맞추면 웃음짓는 아이를 볼 때, 그 쬐끄만 입으로 무언가를 옹알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행복하다. 흰 기저귀를 베란다 빨래걸이에 널 때 쏟아지는 아침햇살은 또 얼마나 반갑고 황홀한지. 아침저녁으로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맞이하러 길에 서있는 시간조차 즐겁다. 물론 아이기르고 집안일 하는게 쉽지는 않다. 남자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집안일을 아내가 퇴근 뒤에 많이 하지만 지칠때가 많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기쁨은 그 이상이고 반복적인 일이지만 몸으로 하는 집안 일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하지만 보름남짓 남은 휴직기간과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한 아이기르기 문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첫 애는 어머니가 키워주셔서 고민이 없었다. 막상 둘째를 낳고, 어머니나 장모님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아이를 맡길데가 없어지자 육아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됐다. 애 봐줄 사람을 들이거나 육아휴직을 하거나 아니면 나와 아내가운데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 둘을 봐줄 ‘좋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어려워 육아휴직에 희망을 걸었다. 안식월제 실시에 따른 편집국의 인력난이 걱정됐지만 두 여자 선배의 선례가 용기를 줬다. 하지만 결과는 육아문제 해결을 위한 1개월의 ‘말미’를 확보한 데 불과했다. 남자에게 육아휴직을 ‘허락’한 데 대해 “역시 한겨레”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적이 실망스러웠다.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 사회의 한심한 복지수준을 체감하고 있다. 다른 OECD국가와 달리 우리의 경우 육아문제는 오롯이 부모와 조부모들이 책임지고 있다. 심지어 노인복지는 손주보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데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 지경이다. 또 직장과 아이사이에서 고민하는 아내를 보면서 육아문제 해결은 여성문제의 핵심고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여성은 ‘모진’ 엄마가 되거나 사회적 진출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내고 나서 여러 언론사에서 전화가 왔다. 남자의 육아휴직이 ‘기사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이런 일이 더 이상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한다.
끝으로 한달동안 내가 할 일을 기꺼이 나눠맡아 고생하고 있는 같은 부 선후배 동료들과 부장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언론노보 281호(2000.5.1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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