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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읽으면 행복합니다
[0호] 2000년 06월 01일 (목) 15:48:37 KFPU X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확실한 지혜>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인생

황제보다 더 고귀한 삶 살다간 진정한 자유인


노예와 황제의 듀엘. 최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란 영화의 기본 골격은 이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살해한 뒤 제위에 오른 부덕한 황제 코모두스와, 로마군의 장군 지위에서 노예 검투사(글래디에이터)로 전락한 막시무스의 결투. (막시무스는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며, 코모두스 황제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짜낸 허구이다.) 막시무스는 노예로 전락한 뒤에도 자존을 잃지 않았고, 마침내는 황제보다 더 위대해진 노예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캐릭터는 이 진부한 고전고대 영웅담의 흥행을 보장한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두 사람의 '노예와 황제' 커플이 떠올랐다.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55?∼135?)와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121∼180)가 그들이다.
에픽테토스는 로마 제국의 변방인 프리기아(지금의 터키 내륙지방)에서 노예로 팔려왔다. 그는 노예였지만 매우 사색적인 사람이었다. 장작을 패다가도 생각에 잠겼고 물동이를 지고 오다가도 명상에 빠져들었다. 생각하는 노예를 가만히 두고 지켜볼 주인은 그때고 지금이고 별로 없다. 그의 주인은 에파프로디토스라는 사람이었는데, 노예가 행한 사색의 깊이를 알아볼 안목이 없었던 그는 잔인하게도 이 '게으른' 노예의 다리를 분질러 버렸다. 노동할 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한 에픽테토스는 더욱 자주 사색에 빠져들었고,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의 강의에도 참석했다. 주인은 노예로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그를 놓아주었다. 다리 하나를 잃은 대가로 자유인이 된 에픽테토스는 로마로 가 그곳에서 스토아 철학을 강의했다. 그 자리에는 훗날 황제에 등극하는 어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끼여 있었다.
에픽테토스는 한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다. 오늘날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저작 <어록>과 <편람>은 그의 제자 아리아누스가 그의 강의 내용을 추려 엮은 책이다. 에픽테토스의 사상을 직접 접하고 싶다면 최근 번역된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확실한 지혜>(까치 펴냄)란 문고본 크기의 얇은 책이 있다. 그는 먼저 "어떤 것들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원리를 이해하면서부터 행복과 자유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가령 부잣집에서 미남 미녀로 태어나거나, 일확천금의 횡재를 한다거나, 불로장생한다거나, 높은 지위에 오른다거나 하는 일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에 속한다. 반면 자신의 견해와 욕망 따위는 우리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뜻대로 안 되는 일을 뜻대로 하려는 데서 고통과 불행이 싹튼다. 에픽테토스는 외부 사물 대신 우리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 내적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어떤 강요에도 시달리지 않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들을 불온하게 본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이 노예 출신 철학자를 로마에서 추방했다. 그는 에픽테토스의 신체는 구속할 수 있었지만, 에픽테토스의 첫 주인과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사색의 자유를 빼앗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진정으로 황제보다 더 고귀한 삶을 살다간 자유인이었다.


/ 언론노보 282호(2000.6.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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