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분방한 상상, 몸으로 느끼는 '자유'와 '고독'

* 배수아의 아름다운 몸 이야기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이룸, 2000


이집트의 고대도시 헤라클레이온과 메노티스의 유적이 해저에서 발견되어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도 언급된 이 도시들은 2500년 전 지진으로 파괴된 후 수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중해의 무역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도시 전체가 바닷속에 잠겨 있는 모양이니 그야말로 대단한 고고학적 발굴이다.
이 유적에서 인양된 풍요의 여신 '이시스'의 석상 사진을 신문에서 보았다. 머리부분이 잘려나갔지만 이 석상은 매우 풍만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여체의 형상이었다. 매끄럽고 정교한 솜씨로 새겨진 조상(彫像)은 얇은 천을 두르고 있는데, 섬세하게 표현된 천의 주름은 오히려 몸의 선과 양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처럼 오래된 유물에 담겨 있는 몸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접할 때면, 인류의 몸에 대한 감각이 수천년 동안 퇴보하거나 지리멸렬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박찬호와 박세리가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돈과 명성을 목표로 한가지 운동에 몰두하는 스포츠 스타들의 몸을 조건없이 아름답다고 할 것인가. 톱과 칼을 대어 뜯어고쳐서 본래의 자기 얼굴을 짐작할 수 없는 성형미인들을 보고 넋놓고 매혹당하고 있어도 좋은 것인가.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시대를 버팅기며 살아오는 사람들에게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란 사회의 부속물로 쓰인 것 외에 나만의 무엇이 되었던 적이 있는가.
배수아의 몸 이야기는 몸에 대한 상상이다. '90년대의 딸'인 이 소설가는 정치와 경제가 폭주하는 틈새를 비집고 우리가 느끼는 몸이란 이런 것이라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군데군데 삽입된 만 레이의 누드 사진들, 매우 도발적이고 일탈적일 것 같지만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하고 때로는 사회학적이다.
페티시즘, 누드해안, 카섹스, 나르시즘, 인신공양, 관음증, 동성애, 노출 등등을 이야깃감으로 삼아 배수아는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그의 생각은 '우정의 한 형태로 섹스를 선택할 수 있는 친구'나 '성행위 없는 결혼'에 이르기도 하고, 죽어가는 부랑자에게 모유를 짜먹이는 {분노의 포도}의 여자와 여의도의 비오는 찻길에서 본, 벌거벗고 걸어가던 남자를 떠올리기도 한다.
다이어트에 대한 여성들의 강박증을 언급하면서는 상투적인 비난 대신 "과거 절대빈곤의 시절과는 반대로 비만이 경제적인 열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고 하면서,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다이어트에 집착하게 된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럴 법해 보인다. "집단생활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어쨌든 타인이라는 지옥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너무 '고독한 몸'과 '자신에 대한 연민'을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동안 얼마나 자신의 '몸'을 돌보아왔던가.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에 의해 소외당해, 고독과 설움에 싸여 몹시도 수척해 있는 것 아닌가.

김 이 구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사 편집국장)



/ 언론노보 283호(2000.6.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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