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의 희망 산별노조에서 읽어

노동자 권익, 시대적 사명 담아내야


김동민(한일장신대 교수·김동민)

산별노조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불필요할 것 같다. 언론노련과 각 단위노조 집행부가 노보 등을 통해 충분히 주지시켰을 것이고, 따라서 조합원들도 이제는 그 대의에 동의하고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KBS 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투표를 가볍게 통과시킨 데서 몇 년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이 타 언론사에서도 차질 없이 진척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가지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5월16일 MBC는 에서 재벌과 신문사의 족벌세습 경영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였다. MBC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온갖 압력에 시달리는 동시에 족벌신문들의 야비한 공세까지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태에 대해 KBS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다. KBS는 정권 초기에 족벌신문의 문제를 다루려다 경영진의 저지로 무산된 경험이 있음을 상기해보기 바란다. MBC는 이렇게 내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치고 나가는데 KBS는 무얼 하고 있는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혁이라는 사명을 받아왔을 법한 박권상 사장이 기대에 어긋나는 엉뚱한 행보를 하며 방송계의 황제로 군림한다는 비판까지 나온 마당에 KBS 노조가 파업을 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MBC 노조는 힘을 보태지 않는다. 물론 MBC는 대체로 잘하고 있다. 시청료를 거두는 공영방송 KBS보다 훨씬 낫다. KBS에 귀감이 될 정도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각개약진해서는 개혁의 큰 흐름을 형성하기 어렵다.
MBC가 재벌과 족벌신문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이 MBC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KBS가 개혁에서 멀어지는 갈지자걸음을 걷는 것도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공히 해야 한다. CBS 사태 역시 CBS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민일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째서 보도도 제대로 하지 않는가? 동업 노동자 동지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두가 아직까지 기업별 노조의 틀과 의식에 꽁꽁 묶여있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산별노조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으로서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고 향상시키는 제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전히 보다 중요한 목적은 지속적인 개혁의 추진이다. 방송개혁은 미완성으로 남아있고, 신문개혁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 제반 분야에서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어 방송노조의 역할은 막중하다.
다시 KBS 파업으로 돌아가서 보자. 파업의 핵심적인 이유가 개혁의 미비냐 임금문제냐를 두고 노사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노조는 외형적 이유는 임금문제지만 핵심은 개혁이라 했고, 사측은 임금문제로 단정했다. 노조는 개혁을 이유로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되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임금문제를 앞세웠을 뿐이라 했고, 사측은 개혁을 거론하는 것은 임금인상을 위한 전략일 뿐이라고 몰아 부쳤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측은 치졸했고 노조는 위축되어 있었다.
노조는 임금인상을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고 파업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임금 이외의 문제 특히 사내개혁의 미비를 이유로 해서도 얼마든지 합법적인 파업을 할 수 있다. 노조는 조합원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KBS가 스스로 개혁적이지 못하고 사회개혁을 위해서도 제 몫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좀 많은가? 그 책임은 사장이나 경영진 뿐 아니라 노조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향하고 있다.
그러면 노조는 왜 위축되었으며, 사측은 왜 그토록 치졸하게 임금인상 문제로 단정해버렸는가? 노조는 여론의 비난이 부담스러웠던 것이고, 사측은 바로 그 여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여론이란 게 무엇인가? 바로 신문들이 조작해내는 주장이다. 어느 경우에나 예외 없이 노사간의 갈등이 있을 때는 사측을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두둔하는 족벌신문들이 있기에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신문개혁이 모든 개혁에 우선할 수밖에 없는 과제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방송노조는 신문개혁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제작 편성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사내 반개혁세력과 투쟁해야 한다. 그만큼 방송노조에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 막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수행해나가기에는 기업별 노조로는 부적절하다. 노동조합의 힘은 되도록 많은 숫자로 결집된 조직에서 나온다. 그래서 권력은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기업별 노조를 선호한다. 전두환 정권이 강제한 기업별 노조의 형태를 언론노조가 답습하여 오늘날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지나온 길을 회상해 보라. 수많은 동지들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여기까지 왔으나 돌이켜보면 숫하게 깨지지 않았는가? 소아적 조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방송노동자들이 하나로 행동을 통일했다면 무고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더 많은 걸음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언론산별노조의 큰 걸음을 내디뎠으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방송노조부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지난 시절의 앙금은 모두 떨쳐버리고 대승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그 역량으로 신문노동자들을 포괄해야 한다. 나는 우리 사회 개혁의 희망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소탐대실을 버리고 대탐소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 언론노보 283호(2000.6.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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