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3년만의 첫 출근

넥타이 메고 어색한 발걸음
낯익은 수위아저씨
"혹시 조기자님...."


편집권 유린 사장퇴진 및 공정보도 수호를 외치다 기자직 박탈(1997.7.9)과 강제 해직(그해 7.25) 당한 지 만 35개월 만인 6월 1일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로 확정판결이 난 지 꼭 50일 만의 일이다.
한 달 이상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작스런 출근 통보는, 그것도 등기우편(내용증명)으로 받은 '출근 통지서'는 마치 입영영장 같았다. 몇 월 몇 일까지 입대 안 하면 헌병 실은 백차가 와서 잡아가듯이, 지정한 날에 출근하지 않으면 다시 해고(?) 시키겠다는 으름장 같은 출근 통지서였다.
학수고대했으면서도 왠지 찜찜한(임금, 소송 미해결) 그날이 어쨌든 다가왔다. 해직기간 동안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집안은 달동네까지 밀려와 3년만에 첫 출근하는 발걸음은 낯설고 어색한 내리막으로 시작됐다. 오랜만에 매보는 넥타이는 갑갑했고, 오그라든 양복과 광기 잃은 구두 차림의 거울 속 내 모습도 낯설었다. 해직 때 생후 갓 한달 째였던 아들 녀석이, 역시 3년만에 친정살림을 끝마치고 최근 올라온 아내와 함께 현관에서 배웅하는 모습도 낯설기는 마찬가지.
맨날 집에서 노는 줄 알았더니 웬 출근이냐는 듯,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시선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기야, 해직기자의 기개를 버리지 않는다고 집 안방에다 차린 시사통일신문, 도서출판 열린포럼21 일로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었으니….
마포 염리동 집에서 회사가 있는 용산까지는 차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다. 그 20분의 거리를 3년만에 다시 찾았다(물론 파업 땐 거기서 94일간 철야 천막농성을 벌었지만). 한때 철 구조물로 출근길을 가로막던 낯익은 정문 수위아저씨(청원경찰)가 거수경례를 하며 반긴다.
주차장 바닥에 썼다 지운 붉은 페인트 글씨 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경역5적 물러나라!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지목했던 그들은 지금 없다. 물론 슬프게도 함께 공정보도, 편집권 독립을 외쳤던 300여명의 동지들도 없긴 마찬가지다. 3년 동안 출입을 제지당했던 편집동 현관을 들어서자 낯선 현관 수위아저씨가 묻는다. 혹시, 조 기자님 아니십니까? 그곳에 그래도 '나'는 있었다.


/ 언론노보 283호(2000.6.14) 4면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