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개혁] 공판제가 시작이다

<상> 광당경쟁 실태


강제투입 중앙, 경품 동아 최악

조선 무가지 경품 무차별 살포

경향 최고가 판촉, 한국 끼워팔기

지국장 "규약 지키는 신문사 없다"


'한국신문협회 전 회원사는 신문판매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구독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97년 3월 전국 일간신문은 일제히 사고(社告)를 게재했다. 경기도 고양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만의 일이었다. 2년 뒤인 99년 7월 전국 일간신문은 또다시 같은 내용의 사고를 게재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 직후였다.
현재 신문협회가 스스로 만든 신문판매 자율규약을 지키는 신문사는 없다. 현장에선 폭력·살인이 난무하고 70년대 초반 '설탕'으로 시작된 판촉경품은 21세기형 비데(bidet·시가 13만원짜리 좌변기용 항문세척기)로 직상승하고 있다. 외눈하나 까딱 않는 거대신문사의 횡포아래 지국장들은 빚을 안은 채 골병들고 있다. 언론노련은 신문공동판매제 도입이 신문개혁의 시작이라고 보고 전국신문지국장협의체와 함께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무법천지' 신문시장의 불공정 실태와 대안을 짚어본다.


조선일보 동의정부지국을 운영하고 있는 안진호씨(37)는 지난 5일 같은 지역의 중앙일보 지국장을 '신문판매공정경쟁위원회'에 신고했다. 안씨는 중앙일보 지국이 지난 5월 25일부터 8일간 본사 판매국 간부의 지시로 에어콘형 선풍기 수백대를 무차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또 무가지 5∼6개월 제공하며 불공정 부수 확장에 나서 신문시장을 파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정부지국의 경우 10여개 신문사 지국장들이 지난해 3월9일 경품·무가지를 통한 출혈경쟁을 중지하자는 자정결의를 한 곳으로 공정판매가 정착되는 단계에서 중앙일보가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해 신고했다고 안씨는 밝혔다.
무차별적 신문 확장경쟁은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일 경기도 이천에서는 지국간 자율규약을 위반해 선풍기를 돌리려는 중앙일보 지국과 이를 제지하려는 조선·동아·한국일보 지국 관계자들간의 몸싸움이 폭력사태로 발전했다.
문화일보 전남 광양지국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수백건의 무가지를 제공한 사실이 타지국장들의 신고에 의해 밝혀져 3천42만원의 위약금을 부과 받았다. 또 경품제공 행위로 4백여만원의 위약금이 추가로 부과됐다. 지국 관계자는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부수 확장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자율규약은 공염불로 전락한지 오래다"며 "현재 이 규약을 제대로 지키는 신문사는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일산에서는 조선일보 지국이 5만원 상당의 경품을 판촉물로 사용해 동아일보 지국 관계자들과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일보 오륜지국(송파구)은 한국일보에 일간스포츠를 끼워서 월 1만2천원, 한국일보+서울경제 1만1천원, 한국일보+일요신문 1만원 등 끼워팔기에 나서고 있으며 '뉴 밀레니엄 사은품'으로 레저용TV, 브레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최고가 경품기록을 경신했다. 이 신문은 창간 53주년 기념행사 명목으로 시가 13만원짜리 비데(자동항문세척기)를 확장용 경품으로 내세우며 안양지국·산본지국 등 일부 지국의 경우 선착순 50명에 한해 비데를 제공한다는 광고전단지를 신문에 끼워 판촉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동네의 부녀회장에게 먼저 경품을 무료로 제공한 뒤 '공략대상자'를 낙점 받는 수법도 쓰고 있다. 또 경향신문 신면목지국은 최근 신규 구독자들에게 5만원을 넘는 수족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지난 5월 말부터 분당의 시범지국과 일산에서 아파트 입구에 좌판을 벌이고 시가 5만원 상당의 교자상·믹서기·선풍기 등 경품을 진열해 놓은 채 주민들을 상대로 버젓이 불공정 판매행위에 나서고 있다. 지난 96년 5월에는 한국일보 지국이 신문구독의 대가로 위성방송수신용 안테나를 설치해 줘 과다경품제공으로 고발당했었다.
한국신문협회 공정경쟁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강제투입은 22개 신문사 3천2백90건, 경품제공은 196건, 장기무가지제공은 98건이 접수, 이중 393건에 대해 위약금이 부과됐다. 강제투입은 중앙일보가 1천40건으로 제일 많고, 조선 857건, 동아 675건 순이었으며, 경품제공은 동아 55건, 중앙 46건, 조선 44건 순이었다.
올들어는 4월15일까지 처벌현황만 집계됐는데 강제투입의 경우 중앙일보가 37건으로 가장 높고, 조선 14건, 동아 12건 등 72건이었으며, 경품제공은 동아·경향 각각 2건 등 10건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심의위가 신고 받은 것만 집계한 것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우충 한국신문공정판매총연합회 회장은 "비대해진 족벌언론은 신문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무가지와 경품을 살포하며 신문시장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고 사세가 약한 신문들은 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불공정 판매에 나서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지국장들만 멍들게 하는 이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신문공판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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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들의 물량공세는 지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국장들에 따르면 판촉경품은 당시 중앙일보가 무가지 3개월에 얹어 제일제당의 설탕을 뿌리면서 시작됐다는 것. 이후 이러한 경품은 동아와 조선 등 타사들이 합세하면서 가속화됐고 80년대 후반 지갑과 손톱깎이, 컵 등의 수준에 머물다 90년에 중반 들어 중국제 에어컨 선풍기, 믹서기 등 3만∼5만원대까지 오른다. 이어 96년 살인사건 이후 잠시 수그러들다 최근 들어 최고 13만원짜리 경품까지 등장하는 등 신문시장의 자율규약은 붕괴됐으며 무법천지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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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노보 284호(2000.6.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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