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을 떠나는 형에게

지난해 봄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강원도 밤하늘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어두운 밤 우주망원경에 포위된 유충같던 토성의 테두리도 보았습니다. 그 때 형은 "우주 앞에 인생은 한자락 나뭇잎"이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밤하늘 이쪽에서 저쪽을 가르는 별똥별을 가리키며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다. 한 인간의 완성"이라고 형은 말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태준형! 이제 형은 그 우주를 품으러, 인생의 완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나는군요.
지난연말 형이 뉴밀레니엄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지친 몸으로 제 이메일에 남겨뒀던 글이 눈에 한글자 한글자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훌륭하게 죽기 위해서는 훌륭하게 사는 법을 배우라. 살고 죽는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전부다. 왠지 요즘은 내가 살고 죽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던 형의 글. 그 글에 숨겨진 태준형의 고통과 번뇌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서른 일곱인 형이 남겨둔 어린 딸 은비랑 은송이랑, 형수를 생각하면 혼자 떠난 형을 원망하고 싶습니다. 형이 먼 길을 떠나기 전날 밤 "인비랑 은송이랑 보고싶다"며 어린 양을 피웠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떠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모든 육신을 기증하려 했지만 온몸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눈동자조차 기증하지 못해 자신을 탓하던 형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형이 이땅에서 겪은 그 고통과 인내를 생각하면 차라리 즐겁습니다.
이젠 그까짓 암세포 때문에 먹지 못하는 배고픔도, 마지막까지 몰핀으로 연명해야 했던 육신의 고통도, 남들보다 더 좋은 기사를 찾기 위해 밤늦도록 애태운 걱정도 없는 곳에서 예전보다 더 밝게 웃길 기원합니다.
형의 서른 일곱 인생 전부를 합친 것보다 오히려 더 버거웠던 지난 4개월. 그 때 흘린 눈물과 고통을 이젠 말끔히 잊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신대로 천국 본향에서 영혼의 안식을, 취하리라 믿습니다.
형의 마지막 남은 걱정인 은비랑 은송이랑 형수는 우리가 떠 안을테니 이 땅에서 수고하고, 고생하고, 염려했던 무거운 어깨짐들을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래서 이젠 좀 가벼운 걸음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길을 가십시오.
어려움을 앞두고서도 언제나 허허 웃음으로 자신을 달래던 태준형! 우리 잠시 이별한다 생각하십시다. 저나 우리 모두 태준형이 떠난 길을 가야할 사람들이며, 형처럼 천국에 가길 소망하는 사람들이니 결국은 형이 있는 곳에서 만날 것을 학수고대하겠습니다.
태준형! 이 자리에 참석한 선-후배 동료들을 대신해 한 가지 더 바랄 것이 있다면 형처럼 모진 인내 가운데 병중에 있는 준호형이나 창원이형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십시오. 이 땅에 얽매인 우리들이야 마음으로 밖에 그들을 위로할 수 밖에 없지만 우주를 품은 형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으로 준호형이나 창원이형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태준형! 우리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니 안녕 그럼 또라고 인사하고 싶군요. 먼 우주여행 편안히 잘 다녀오시길 우리 모두 소원합니다. 그럼 잘 가.

태준형을 존경하는 후배 병학이와 형을 사랑하던 조선일보 동료들이 형의 천국길을 기원하며


/언론노보 284호(2000.6.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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