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140개 노조 하나로 묶어 전국 최초 건설

연대투쟁으로 고용안정 확보, 교섭력 막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연맹'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한 첫 사례이다.
10여년 동안 140여개 기업별노조들이 모인 연맹체제로 활동하다가 하나의 단일한 산별노조로 전환했는데 이런 사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처음 시도된 것이다. 이런 점을 우리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고, 산별노조 건설을 목표로 잡고 있는 다른 연맹들의 관심과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IMF가 터진 바로 뒤인 98년 2월 27일 태어나 이제 두 돌을 맞는 보건의료노조는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
우선 노동조합 모습이 달라졌다.
각 병원별로 활동하던 140여개 노조가 하나의 노조로 탈바꿈했다. 당연히 위원장도 한사람밖에 없게 됐고 나머지는 모두 지부장이 됐다. 하나의 단일한 조직으로 탄생한 것이다.
또, 연맹에는 기업별노조만 가입할 수 있었는데 산별노조가 된 뒤에는 개별 가입도 가능하게 됐다. 사업장에서 단위노조를 만들지 않고도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되니 규모가 작거나 사용자의 탄압이 심한 곳에서도 노동조합을 따로 만들지 않고도 개별로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병원 이외의 의원, 보건소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들어오고 있다. 기업별노조로서는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산별노조가 된 뒤에는 모두 가능하게 된 것이다.
모양새만 바뀐 게 아니다. 교섭력과 투쟁력도 달라졌다.
교섭권과 체결권을 산별노조 위원장이 갖고 있다 보니 사용자들은 함부로 교섭을 태만히하거나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보이지 못한다. 기업별노조에서는 단위노조만 신경 쓰면 됐지만 산별노조가 된 뒤에는 지부만이 아니라 3만5천명이라는 거대한 노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타결내용도 달라졌다. 산별노조 위원장이 140개나 되는 지부의 교섭을 맡아 일일이 뛰어다닐 수 없어 교섭권을 지부장에게 위임하지만 위원장 도장이 없으면 교섭체결이 안되기 때문에 타결내용도 잘 타결된 곳에 맞춰 상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노조를 탄압하거나 불성실교섭을 일삼는 사업장에는 산별노조의 힘을 집중하고, 임금·단협투쟁 때에는 순서를 정해 연쇄파업투쟁을 배치하는 등 산별노조에 걸맞는 투쟁을 벌였다.
IMF라는 악조건에서도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들이 임금삭감과 단체협약 개악을 막아내고 고용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산별 투쟁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노조활동 또한 많이 달라졌다. 합동조합원교육, 합동조합원 산행 등 기업별노조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역본부 차원에서 함께 하는 활동이 많아졌고, 그만큼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조합비는 본조와 지부로 50%씩 배분하는데, 재정의 중앙집중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 있는 단위노조에 활동비를 지급과 투쟁기금을 지원하고, 정책활동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에도 재정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산별노조가 도깨비방망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산별노조가 만능은 아니겠지만 노동조합조직의 최고형태는 산별노조이고, 기업별노조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는 힘있는 조직형태라는 것은 분명하다.
2년간 보건의료노조 활동은 그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산별노조의 미래는 더 창창하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직부국장
과학기술노조
민주노조 진영의 오랜 숙원이던 산별노조 건설이 최근 가속도가 붙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민주노조 운동진영의 산별노조 건설을 논의하는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이다. 지금과 같이 산업별 연맹이 조직 전환하는 비교적 큰 산별 전환은 아니더라도 기업별노조의 틀을 깬 최초의 실험이었고 이 실험이 성공함으로써 그 뒤에 많은 소산별 노조, 단일노조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노조들이 생겨났고 이제 그런 실험들이 결실을 맺어 보건의료노조, 금융노조가 출범했고 금속산별노조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실험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과기노조는 94년 4월 15일 결성되었다. 과기노조는 당시까지 한국 노동조합의 주된 조직형태이던 기업별노조와는 형태를 달리 하여 기업별노동조합들을 지부로 편제하면서 단일한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이 새로운 조직에 대해 소산별이란 표현은 한 산업내의 소단위(그 단위의 크기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차치하고라도)를 나타낸다는 것이 명확하고 새로운 조직형태가 산별노조의 일종 내지는 그에 유사한 조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소산별 노조라고 불렀다.
과기노조가 미친 영향 혹은 달리 말하면 과기노조 설립과 운영의 최대 성과는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한 형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성과는 노조 결성이 어렵던 기관에 노조 설립을 촉진했다는 점이다. 과기노조 지부의 확장은 한국 노동운동이 정체 내지는 축소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특이한 것이다. 과기노조는 소규모 기업(기관)에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로, 과기노조의 설립은 소산별 노조를 다른 부문에서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아 여러 소산별 노조가 결성되었다.
넷째로, 과기노조는 지역활동 등 기존 기업별노동조합의 일상활동과는 다른 활동을 보여줌으로써 노동조합의 새로운 활동영역을 제시했다. 다섯째로, 과기노조는 모범협약안과 공동교섭을 통해 내용상 통일적인 공동의 단체협약을 갖고 있다.
이같은 성과가 있지만 과기노조는 또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로, 산별노조를 표방하고 있는 과기노조가 산별노조에 걸맞게 재정과 인력이 중앙으로 집중되어 있지 못하고 따라서 그 활동도 집중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통일교섭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셋째로, 규모의 한계이다. 넷째로, 조직대상이 협소하다. 과기노조는 기존 기업별노조와 마찬가지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정규직만을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다.
과기노조의 이런 한계는 더 많은 실험, 더 큰 산별노조의 건설을 통해 극복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산별 실험은 사실 이제 시작이다. 과기노조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조직형식 전환은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산별 교섭은 상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서도 쉽게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 과기노조 혼자 또는 소산별 노조 몇 개일 때는 사회적 영향력이 작기 때문에 산별 교섭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힘들어지만 이제 노동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산별 교섭도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닐 것으로 본다. 한번 부딪쳐 볼 일이다.

-유병홍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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