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얼간이'들이 당하는 고통과
몽매함을 벗어나지 못한 사회

* 위화 단편소설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 푸른숲, 2000


"이런 바보 멍청이, 얼간이가 있나." 위화(余華)의 단편 [난 쥐새끼]를 읽다 보면 이런 탄식이 절로 나온다. "쥐새끼 같은 겁쟁이가 누구게?" 하고 물으면 "나"라고 대답하는 이 인간(양고)은 어려서부터 놀림감이 되더니, 어른이 되어서도 공장의 동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한다. 반면에 약삭빠른 여전진은 공장장을 위협해 청소부에서 조립공이 되고, 출근해서 잠만 자지만 봉급은 더 빨리 오른다.
양고의 아버지가 죽은 사건도 어처구니없다. 눈감고 운전해보라고 졸라대는 아들의 성화에 눈을 감았다가 앞에 가는 경운기를 들이받을 뻔한 아버지는 잠시 후 고장난 트럭을 고치려고 멈춰섰다가 경운기에 타고 있던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얻어맞고 모욕을 당한 아버지는 트럭을 몰고 경운기를 쫓아가서 돌진해, 충돌사고를 일으키고 죽는다.
양고는 밤길에 여전진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껴안았던 사건으로 인해 여전진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다. 여자옷을 둘러쓴 탓에 강간범이 달려든 것으로 착각하고 달아났던 여전진은 그 사건을 떠벌리다가, 양고가 강간범이 바로 자기였다고 말하자 망신당한 분풀이로 무차별 폭행을 가한다. 어휴, 약삭빠른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양고!
이 일로 열을 받은 양고는 여전진을 죽여버리겠다고 식칼을 들고 찾아가는데,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낫다고 웃으면서 따라나선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양고는 그를 죽이는 대신 귀싸대기를 한방 갈겼을 뿐, 또다시 여전진으로부터 무차별로 얻어터지고 만다.
사실 양고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 속에서, 세상사 속에서 그는 모자란 바보이고 아둔한 얼간이이다. 그래서 당하고만 산다. [내게는 이름이 없다]의 래발도 비슷한 부류이다. 거리의 개를 마누라 삼으라고 놀려대던 이웃들은 래발이 정말 개와 친해져 마누라처럼 한집에서 살자, 어느날 그 개를 두들겨패서 잡아먹는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며 부탁하자 래발은 그만 침대 밑에 숨은 개를 불러내주었던 것이다.
위화의 소설에는 이처럼 선량한 얼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못난이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모두 얼마간씩 얼간이이다. [왜 음악이 없는 걸까] [내가 왜 결혼을 해야 하죠] [오래된 사랑 이야기] [충수] 등에는 우매한 인간사가 어떻게 해서 벌어지는 것인지 냉철하게 포착된다. 여기엔 작가의 유머감각이 배어 있는 것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본질적 어리석음과 운명의 손이 야기하는 깊은 슬픔이 깔려 있다.
여화는 최근 급속히 세계에 알려진 중국의 젊은 작가이다. 지난 6월에 우리나라에도 다녀갔는데, 주요 작품이 대부분 우리말로까지 번역된 '행복한' 작가이다. 리얼리즘을 기조로 하면서도 편마다 독특한 형식적 고려를 담고 있는 그의 단편들은 재미있고 산뜻하다. 아직 채 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 물어뜯는 민중들, 근대적 발전과 사회혁명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은 갈등과 실현되지 않은 약속들이 그의 소설의 갈피마다 드러나고 있다.
남들은 다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해도 시간을 지켜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 적은 봉급과 작은 집에도 만족하는 사람, 양고 같은 '착한 얼간이'들이 더이상 얻어맞지 않고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건 누구인가?

김이구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사 편집국장)

/ 언론노보 285호(2000.7.1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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