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못볼 롯데호텔 폭력진압 현장

국민의 정부가 80년대 군사정권입니까?


정부가 노조원 1천1백여명이 파업농성중이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공권력을 투입한 지도 이미 3주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롯데호텔 사태를 둘러싼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롯데호텔 여직원들이 간부들의 성추행이 호텔 안팎에서 자행되고 있다며 여성단체 등과 함께 간부 및 경영진에 대해 집단소송에 나서는가하면 경찰의 음주진압 여부도 명확한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채 지리한 공방전만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같은 사태 확산은 경찰 진압이 이뤄지던 지난달 29일 새벽부터 이미 예견됐던 것이었다. 그날 새벽에 전격 단행된 강경진압은 일부 언론들이 우리 사회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시작된 '신공안 분위기'가 최초로 가시화됐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날 경찰 특공대를 포함한 34개 중대,3천여명의 병력은 노조원들의 퇴로를 차단한 채 작전을 감행했다. 경찰이 투입되자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농성중이던 노조원들은 비상계단에 탁자 등 집기류로 바리케이트를 친 뒤 식용유와 분말소화기를 뿌렸고 소화전을 이용,경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을 퍼부었다. 전기가 나간 상태에서 겁에 질린 노조원들은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컵,접시 등을 던지며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나 이들의 숨가쁜 저항은 연막탄과 동력절단기까지 동원한 경찰에 의해 3시간20분만에 완전 진압됐다. 경찰은 작전 완료와 함께 50여분동안 36층과 37층에 있던 노조원들을 머리가 밑으로 향한채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좁은 공간안으로 밀어부쳤다. 이 과정에서 임산부와 장애인들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왔고 부상을 당했다는 노조원들의 신음소리도 들렸다.서울청 기동대 소속 여경 130명이 투입돼 여성 환자보호와 수송을 담당했지만 급기야 한 임산부가 하혈을 한뒤 탈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경찰봉으로 무차별 구타를 가했다는 노조원들의 주장이 나왔지만 곧 경찰에 의해 제지됐다. 경찰 지휘부는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때리면 안돼"라고 수차례에 걸쳐 지시하기도 했다. 경찰버스에 올라 연행되기 전까지 노조원들의 울음소리와 고함은 간간히 이어졌고 그날의 진압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경찰 진압 이후 무리한 공권력 투입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의사들에게 뺨맞고 힘없는 노조원들에게 화풀이한다'는 말이 설득력있게 들렸고 노조측은 그날의 진압을 두고 '제2의 광주사태'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경찰의 음주진압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그날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데 기자로서의 책임을 느낀다. 사상 초유의 공권력 투입이라는 사실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것에 대해 진정 부끄러울 따름이다. 당시 현장을 보고 느꼈던 솔직한 심정은 '7,80년대 군사정권 당시에나 볼 수 있었던 진압작전이 21세기에 재현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정부와 롯데호텔측이 이번 사태를 통해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알길은 없다. 다만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비난과 수많은 의혹을 얻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항간에서는 경찰과 호텔측의 유착 의혹도 흘러나오고 있다. 모든 것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밀어부치기식 사태 해결에 따른 후유증인 셈이다. 정부는 법이나 제도보다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공권력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언론도 이번 사태를 방조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습니다.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거라 믿습니다"
한 노동자의 말처럼 이번 사태를 둘러싼 의혹은 언젠가는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날까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 언론노동자들의 몫이라는 것도 확신하고 있다.
문화일보 이승형 기자


/ 언론노보 285호(2000.7.1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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