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개혁 - 공판제가 시작이다
<중> 먹이사슬의 현장


광고수익 높이려 끝없는 출혈경쟁

미수금 쌓이면 즉극 해고/가압류

울며 겨자먹기 지국장 빚더미 올라


지역과 사세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신문사 지국장들은 통상 3,000부를 취급한다. 그중 유가부수는 80% 정도여서 약 2,400부에 대한 신문 값을 본사에 낸다. 1부당 4천∼5천원씩 매달 1천만원 꼴이다. 그러나 수금률은 60% 수준을 밑돈다. 운영비·인건비 제하면 남는 게 없고 빚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문사 수익 중 광고와 지대의 비율이 8대2 정도인데 그 20%가 지국장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일보 의정부지국장 염공섭씨는 최근 한국일보 사장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염씨는 2,840부를 취급했는데 98년 8월 한수이북 수해로 독자가 급감하자 유가부수의 1,800부 삭감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미수금은 쌓여 8천만원에 이르고 보증 선 동생에게 가압류조치가 내려졌다. 염씨는 참다못해 공정거래위를 찾았고 공정거래위는 지난해 10월 '신문의 판매목표를 강제하고 공급가격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거래상 지위의 남용 행위로 고발대상'이라고 시정을 지시했다. 한국일보 측은 '지국 요청에 따라 공급 부수를 조절할 것'을 골자로 한 계약조항을 자율변경 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결국 '빚'은 남아있고 이 문제는 법원으로 갔다.
조선·동아·중앙 등 판매부수가 비교적 많은 신문사들은 지국장들이 2개월만 결재가 늦어져도 즉각 갈아치운다.
서울 동부지역 중앙일보 지국장 K씨는 "본사에서 확장부수를 일방적으로 확정한 뒤 지국이 이를 소화해 내지 못하면 보증금·권리금을 갉아먹다가 바닥이 보일 때 바로 교체한다"며 "일선 신문판매시장은 동물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전 지국장 M씨는 "전국 1,500여개 지국장이 한 달 새 10명 이상 갈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울며 겨자먹기식 출혈경쟁의 실상을 전했다.
전북지역에서 한겨레 지국장을 지낸 S씨는 "판매부진으로 550부중 절반의 삭감을 요청을 했으나, 유가부수는 줄이더라도 입금액은 495부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삼모사식으로 대해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수도권부장이 지난달 28일 일선 지국에 보낸 '사무연락' 문서는 신문사간 과당경쟁의 실상을 잘 말해준다. '지국 수지개선을 위한 확장분발촉구'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2월 14일∼5월 27일까지를 춘계확장기간'으로, 이틀 뒤인 '5월 29일∼9월2일까지를 하계확장기간'으로 설정, 지국당 300부를 확정목표로 정했다는 내용을 재차 강조하며 판매를 독려하는 내용이다. 경향신문은 특히 '올 6월부터 확장에 무관심한 지국은 지대인상을 단행하고, 확장에 노력하는 지국은 영향이 없을 것'을 문서에 밝히고 있다.
본사 지대를 못 맞춰 허덕이는 지국장들은 신문 파지를 팔아서 충당하는 경우도 많다.
광주에서 조선일보 지국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매일 신문 3천여부 가운데 30%는 폐지로 나가며 하루 평균 1,000부를 무게로 팔면 월 60만원을 종이 값으로 받는다"고 했다. C씨는 또 "폐지처리되는 부수를 줄이고 싶어도 어차피 규정입금액을 내야 하기 때문에 폐지처리라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지방지의 경우 절반 이상을 폐지장사에게 넘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다수 지국장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 전업을 하거나 그나마 살아남기 위해 사재를 털어 버티고 있다. 신문 판촉용 경품비용은 통상 본사와 지국이 공동 부담하는데 최고 16만원대(제주도 2일 숙박권)에 이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품과 무가지를 무한정 배포하다보니 본사와 지국이 함께 안으로 곪아들면서 신문사의 부실과 지국장의 파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먹이사슬처럼 얽혀있는 한국 신문판매시장의 뿌리깊은 병폐가 거기에 있다.
자정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신문협회는 97년 자율규약을 통해 1년 구독을 기준으로 무가지의 경우 2개월, 경품은 연간 구독료의 6%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지난해 7월부터는 '독자무가지신고제'를 도입해 신문구독을 조건으로 2개월을 초과하여 무료 신문을 제공하는 사례를 신고할 경우 확인절차를 거쳐 신고자에게 20만원의 사례금을 지급하고 있다.
신문공정경쟁규약집행위원회 서정식 간사(신문협회 기획부장)는 "당장의 근절은 어렵겠지만, 과열경쟁을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펴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장의 신고건수는 여전히 극소수에 머물고 자율규약은 공염불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박소라 연구위원은 "한국 신문사의 광고·판매수익은 미국과 비슷한 8:2 정도로 추정되는데 ABC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의 상황에서는 이같은 수치가 기형적 신문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즉 박 위원은 더 많은 광고수익을 위해 발행부수를 최대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경품과 무가지가 등장하는 '광고를 위한 판매시장의 무차별적 확장'에서 무법천지 신문시장의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광고료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여 신문판매전략은 무가지·경품 살포의 폭주로 경영난을 자초할 수밖에 없고, 일선 지국장들의 공급축소 요구는 묵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신문개혁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공정판매제도의 정착과 사주의 횡포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 언론노보 285호(2000.7.1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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