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파업의 원인진단에서 처방까지 신문은 부실한 보도를 했다. 노조를 삐딱하게 보는 시각과 편파성도 여전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갈등해결 능력이 부족하고 정책수행에 큰 결함이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구조조정의 원칙을 관철해야 한다느니 또 사회기강이 느슨해져 정부의 말발이 서지 않는다느니 하며 정부를 몰아세워 정부가 노조의 요구에 물러서기 힘들도록 분위기를 잡아갔다.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팽개친 이러한 행태로 판단하건대 신문이 금융파업을 부추겼다는 말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싶다.
대다수의 신문들은 이번 금융파업을 정부의 말 바꾸기와 노조의 피해의식에 따른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했다. 틀리지는 않지만 결코 올바른 진단은 아니다.
勞政갈등의 본질은 지난 1차금융개혁이 노동자의 고통만 있었을 뿐 별 성과가 없었다는 노조의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노조는 이번 개혁은 제대로 진행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뒤따르는 고통은 최소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의 보완과 관치금융청산법을 만들자는 노조의 요구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반해 정부는 1차개혁의 문제점을 자인하기 싫은 것이며 노조와 이 문제를 협상할 경우 자꾸 밀린다는 인상을 주게 돼 앞으로의 정책수행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노조를 정책협상의 파트너로 삼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양자간에 이 같은 입장차이가 대립의 원인이며 쟁점인 것이다. 그 동안 신문들 역시 1차금융개혁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음을 생각하면 정부의 2차개혁의 문제점을 따져 보지 않는 것은 정책견제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것이다.
잘못된 진단에 바른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일부 신문들은 금융파업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부쳤다."국민의 재산을 담보로 한 힘겨루기... 누가 더 큰 대란을 일으키는 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국민 3일 사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생존권차원인 노조의 절박한 요구를 이같이 매도하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고 정부를 견제한다는 신문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다.
모든 신문들이 대화로 파국을 막자고 말하지만 공허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려는 배경이 무엇인지 또 노조가 관치금융청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일부 신문은 노조가 파업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관치금융청산을 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는...관치금융청산등 거창한 거시금융정책에서 보다 노조원들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사안으로 내려오길 바란다(대한매일 8일 사설)"등. 그러나 관치금융이 1차금융개혁의 부실을 초래했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단순히 이것을 노조의 명분 세우기 전략으로 치부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해석이다.노조가 관치청산을 요구하는 것은 1차개혁의 부실이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서 비롯되었음을 먼저 인정하라는 의미이다. 이같은 요구는 노조가 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함과 동시에 부실한 개혁을 되풀이 말자는 당연한 요구이기도 하다.
이들 신문은 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고(중앙 5일 사설)...구조조정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중앙 10일 사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부는 "분명한 원칙으로 정면돌파 해야(중앙 5일 사설)"한다고 요구하거나 "기강을 세워야(문화 6일 사설)"하며 "단호한 의지를 보여 실추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한국 11일사설)"라고 주장한다.
사설뿐 아니라 해설기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정의 쟁점을 나열 보도했을 뿐 그 의도나 파장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데에는 소홀했다.
협상장의 스케치 기사나 양측의 주장을 중계하듯 보도하는 것이 독자나 勞政양측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파업예정일인 11일이 가까워지자 신문들은 노조를 협박하고 경제불안을 과장하는 듯한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10일 "은행파업 최악땐 제2의 換亂"기사를 9면 톱으로 처리했다.
대한매일은 7일 사설에서 "파업을 하면 시장에 의해 감원이 더 촉발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으며 6일 사설에서는 "금융개혁에 사활이 달렸다"며 노조를 反개혁세력으로 몰아가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동아일보는 7일부터 3차례 잇따라 경제면 톱으로 경제불안을 가중시키는 기사를 보도했다. "시장 은행퇴출기능 강화...2차 구조조정 앞당겨질 듯(동아 10일 9면, 익명의 금감위관계자의 주장에 의존해 기사를 작성해 매우 편파적이었다.)" "단기외채 비중 33%...26개월만에 최고(동아 8일 8면)" "동남아 화폐가치 하락... 換亂 또 오나(동아 7일 8면)"등이다. 타지에 비해 크게 보도한 점이나 무엇보다 정부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에 대해 익명의 전문가의견을 들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보도 한 점은 불안을 과장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노정 누구도 파국을 원치 않는다. 민주사회란 분출되는 이해집단의 요구를 그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집단의 요구가 물리력에 의해 묵살되고 억압될 때 오히려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노조를 혼란의 주범으로 보거나 정부를 재촉하여 타협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언론이
중재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다. 언론의 자성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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