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언론을 보면 반미가 곧 용공으로 인식되던 시절에 비해 달라진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언론 할 것 없이 사설과 칼럼 등으로 주한미군의 오만한 자세를 질타하는가 하면 만화를 동원해 미군을 희화화하기도 한
이는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 주변의 주민 피해상황이 알려진 데 이어 미군의 독극물 한강 방류 사실이 폭로돼 국민들의 반감이 높아졌기 때문이지만 달라진 한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언론의 발빠른 여론 읽기와 상황분석은 협상을 눈앞에 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논의와도 맞물려 유례없이 많은 주한미군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최근 2주 동안 중앙종합일간지의 사설만 훑어보아도 `무성의한 주한미군 사과' `미군은 사실부터 밝히라' `전환기에 이른 한미관계(한겨레), `미군의 사과 연기-취소 소동' `미군기지의 독극물 방류 의혹' `SOFA 개정 호혜원칙으로'(중앙), `사과부터 성의 있게' `반미감정과 SOFA 개정`(세계), `주한미군 오만 지나치다' `유감스런 미국의 대한인식(국민), `미흡한 미군 사과'(대한매일), `미군의 독극물 방류와 SOFA'(문화), `한강에 독극물 쏟아붓다니'(경향), `독극물 방류와 SOFA'(한국), `포토맥 강에도 독극물 버리나'(조선) 등에 이른
신문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미군의 잘못된 태도를 꼬집고 일본 주둔군 지위와 불균형을 지적한 뒤 진정한 우방관계를 이루기 위해 SOFA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여놓았다. 해설이나 칼럼 역시 이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일반 보도기사는 주한미군이나 시민단체, 정부, 국회 등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어째서 이러한 불평등 협정이 맺어졌으며 일본이나 독일의 주둔군 협정과는 어떻게 다른가이다. 더 나아가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군사력 균형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으며 그 존재와 역할이 한반도의 평화정착 노력과 어떤 연관성을 갖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의 언론보도에서는 이 문제를 깊이있게 파헤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ㆍ일본ㆍ독일의 주둔군 협정을 항목별로 비교한 26일자 대한매일을 비롯해 SOFA의 문제점과 일본과의 불균형 문제를 지적한 18일 및 19일자 한국일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21일자 한겨레 논단 등이 돋보일 따름이었다. 20일 동아일보가 「뉴스위크」 최신호를 인용해 동북아 미군의 흔들리는 위상에 대한 해설을 실었으나 철저하게 미국 입장에 기초한 기사였
주한미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제쳐둔 채 주한미군 철수 요구 움직임을 경계하는 논조를 펼친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문화일보는 19일 시론과 17일 포럼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정착이 이뤄지기도 전에 주한미군 철수론이 대두되는 것은 국익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한술 더 떠 26일 조선일보는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대체하자는 제안 자체가 위험한 논리라고 공박하는 시론을 실었다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서는 오키나와의 사례를 들어 따끔하게 지적하면서도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 철수 요구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 것일까. 미군 철수나 역할 변경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마저도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일까. 이미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의제에 대해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를 망각하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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