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약 50년 동안 사용되어 온 컬러 텔레비전 방식은 21세기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과 함께 새로운 변화 즉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미 영국과 미국에서는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본 방송을 하기위해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97년에 선진국들이 개발한 기술표준 중에서 화질이 가장 낫다고 알려진 미국방식을 선정하였으며, 디지털 방송의 도입은 현정부의 100대 과제로 선정되어 조기실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선정한 미국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최근에 이르러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방식은 특히 수신측면에서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아 왔는데 급기야 최근에는 미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릴 정도로 미국방식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철저한 현장검증 시험을 통해 방식을 선정한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이론적 검토만을 계속했을 뿐 아무런 현장검증시험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미국쪽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만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참으로 딱한 처지에 처해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마저도 자존심을 꺾고 국제적으로 (압도적인)선호를 받고 있는 유럽방식에 대한 현장 비교 시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비교시험은커녕 디지털 방송을 예정대로 강행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책임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정부의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방송사 경영진에게도 있으나,국가의 기술주권을 포기하면서 까지 특정국가에 편향된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정책당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방송방식은 국가의 기술표준으로서 한 번 결정되면 온 국민이 수십 년 동안 사용해야 하는 만큼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방송 방식의 선정이 고속철도와 케이블 TV, 그리고 위성방송에 이어 또 하나의 정책적 과오로 기록되지 않도록 정책당국의 적극적이고 열린자세를 방송에 종사자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박병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언론노보 287호(2000.8.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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