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농성장에 시청자 밀물

"언론이 제역할 다했다면" 질타


한 여름의 태양열이 후끈 달아오른 서울역 광장의 지난 주말 오후. 주차장을 등진 작은 천막 안에 부쩍 늘어난 여행객과 노숙자 수십명이 웅성거리며 발길을 멈추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곳에 공안탄압분쇄 농성장을 마련하고 롯데호텔 폭력진압의 실상을 담은 녹화 비디오를 틀고 있었다.
"저렇게 심했나. 아예 개 패듯이 패는구만. 저것들 어느 나라 경찰이여" 구경꾼들의 분노가 여기저기서 튄다.
그 테이프는 민주노총이 각 방송사 기자들로부터 현장에서 취재한 비디오테이프를 넘겨받아 7분짜리를 이어 붙인 1시간용으로 무차별적 '음주폭력' 진압과정이 생생히 담겨있다. 당시 뉴스에서는 고의로 또는 석연찮은 이유로 축소·삭제됐던 화면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우리가 여기서 왜 이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야 하는지, 언론이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제역할을 다했다면, 우리가 이 뙤약볕 아래 서 있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흥분하며 반문했다.
시민들은 믿기지 않는 듯 한차례 영상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TV 수상기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한 시민은 요구르트 100개를 사다주며 "고생한다"고 하고, 어떤 여행객은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농성자들은 혹시 롯데제품이 아닌지 확인하며 반품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스에서 접하지 못한 화면을 거리에서 쪼그려 앉아 봐야 하는 사람들. 신문에서 읽지 못한 진실을 입을 통해 전해 들어야 하는 시민들, 얇은 천 한 장으로 성하(盛夏)의 뙤약볕을 가리고 비닐 장판 한 장으로 아스팔트의 복사열 깔고 앉아 실상을 '보도'하는 노동자들의 풍경은 우리언론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 열흘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초췌한 모습의 단병호 위원장이 중심에 앉아있고 이용식 건설노련 위원장 등 각 연맹 위원장들이 동참하고 있다. 최문순 언론노련 위원장도 한쪽에 죄지은 사람처럼 쪼그려 앉아있다.


/ 언론노보 287호(2000.8.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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