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판매 정상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의 신문 판매 시장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하는 데 대해서 새삼 논의를 전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다시 거론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 문제를 그야말로 알아야 할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신문판매시장이 지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 핵심 과제는 현실 분석이나 이론 개발에 있지 않다. 그것은 지난 96년 판촉살인 사건이래 지금까지 간행되어 온 여러 가지 현실 분석보고서나 세미나, 워크숍 자리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었다.
이제 한국 신문판매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해야 할 때이다. 현재 한국 신문판매 정상화와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를 들라고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언제나 이불 밑에서 만세 부르는 식의 논의만 무성한 점일 것이다.
소비자 운동이나 언론 운동 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 언론노조 관계자, 기자협회, 신문 판매부문 종사자, 신문협회 책임자, 정부의 관련부처 고위직 책임자(심지어 대통령까지),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 법조인, 경영학자, 언론학자 등 누구도 토론회와 같은 공식 석상에서 문제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공감을 표시했음은 물론 그 심각성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래서 이런 '행사'가 끝나고 나면 곧 해결 쪽으로의 움직임이 작게라도 있을 것이라 늘 생각했지만 고작 시늉만 몇 번 있었을 뿐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왜 아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우선 밤의 황제 자리를 놓고 다투는 각 사 사주들의 양보할 수 없는 권력욕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신문판매 시장의 구도를 황제 자리다툼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유로 거기에는 단 한 사람 최후의 승자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즉위만 하면 모든 희생의 대가를 일시에 보상받을 수 있으므로 지금은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정상화 내지는 공동판매제를 사내에서 논의하는 것은 곧 불충이요 여론의 다양성이니 다양한 의견의 공존이니 논하는 것은 곧 역적행위가 될 것이다.
한국 신문 대부분의 소유구조가 족벌 대표에 의한 1인 전횡 체제로 구축되어 있는 만큼 가장 효과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인 신문 종사자들이 그간 아무런 목소리를 못 내왔음은 일견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당장 신문공동판매제도를 일시에 실현해서 어느 날 한시에 모든 신문들이 자신들의 신문 판매를 모두 공동판매회사에 맡기도록 강제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닌 것 같다. 헌법과의 마찰 문제도 있고 해서 현실적인 방법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 보다는 오히려 공동판매회사를 목표로서가 아니라 부문운동의 결과로 수확하는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된다. 마침 지금은 언론개혁 시민연대라는 연대조직이 시민운동 단체, 언론사 노조, 언론학계 등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만큼 각계의 부문운동이 산발적인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각 부문에서 자신들이 받고 있는 피해를 줄여나가는 구체적인 운동을 펼쳐나감으로써 결과적으로 신문사들이 신문공동판매를 하지 않을 이유를 없애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자는 이야기다.
수용자 운동 부문부터 짚어 보자.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보는 신문이 광고지가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광고로 치장되어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쪽이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언론기관이라는 이유로 주어지는 여러 가지 세제 혜택이 있기 때문에 국민이 이에 간섭할 정당한 근거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광고가 전체 지면의 50%를 넘는 신문의 경우 영국이나 일본등에서와 같이 광고지(shopper)로 분류하여 정기간행물 등록에 부적합한 매체로 규정하도록 하여 각종 혜택에서 배제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광고를 받기 위해 무한정한 증면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사되면 판매에서 손해를 보고 광고로 이를 보전하자는 논리가 수그러들 수 있을 것이다. 부수는 적으나 질이 좋은 신문들에 광고가 분산될 수 있는 효과도 부차적으로 얻을 수 있어 신문시장의 다양성 증대에 다소나마 도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방문판매법의 개정을 통하여 신문을 방문판매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요구하는 일도 필요하다. 가판으로 판촉을 할 경우 불법판매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나 신문사간 상호감시가 훨씬 용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신문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언론노동 운동 부문이다. 산별노조의 결성이 점차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 또한 과거보다 좋은 조건에 있다. 노조의 자사이기주의만 없다면 무가지를 뿌리기 위해 동료가 희생되는 일은 막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체협상 등을 통하여 무가지 남발 등과 같은 출혈경영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는 감시장치를 작동해 볼 수 있다. 출혈경영은 각 사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내용 밖에 되지 않으므로 노련 차원의 범 노조 운동으로 전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국 부문이다. 지금 신문공정판매협의회라는 조직이 등장하여 이미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더욱 박차를 가해 전체 신문사 지국장들이 어떤 형태로든 지금보다 강력한 형태의 조직으로 단합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각 신문사마다 지국장들의 모임이 대부분 결성되어 있어 자신들의 복지향상을 도모해온 점도 참고할 만한 사항이다. 언론노련이 이의 강력한 후견자가 되어 준다면 어렵지 않게 조직을 결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것이 된다면 지금 불법적인 수준이라고 할 만큼 불공정한 계약을 통해 본사의 무분별한 판촉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많은 지국장들이 스스로의 복지는 물론 독자의 복지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 번째는 이른바 마이너 신문부문들에서의 할 일이다. 전략적 제휴를 통한 판매 공동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경사판매 등을 이유로 꺼리고 있다. 그렇다면 폐지된 신문고시의 부활을 힘을 합쳐 강력하게 주장해주는 일은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신문고시가 없어짐으로 해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데는 역시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언론 소비자 운동이 일어날 때 이를 뒤에서 강력하게 뒷받침 해주는 것도 이들의 할 몫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부문 운동들이 가열차게 진행될 때, 연대조직의 하는 일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연대조직의 본령인 지원활동과 총괄활동이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개별 부문활동의 입법청원을 돕는다든가 현재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각 부문의 개별사례에 대해 법률구조활동의 지원을 하는 것이 그 내용이 되겠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매체 점유율 규정과 같은 보다 큰 논의를 위한 정간법 개정 같은 총체적인 문제를 거론한다면 한국의 신문시장을 근본에서부터 바꿀 수 있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연구(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 언론노보 288호(2000.8.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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