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이산상봉이 끝났다. 신문들은 피맺힌 반세기 한과 눈물을 절절히 보도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고 물량경쟁이 심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크게 흠이 될 일은 없었다.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지난 85년 이산상봉보도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85년 보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체제우월성 경쟁과 이질성의 확대 재생산이었다. 남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의 어두운 생활상을 전하는 기사와 사진이 많았다. 또 북한사람의 엉뚱한 말 한마디가 희화화되어 크게 보도되었다. 이를테면 "천당이 여기(북한)인데..."(중앙 85.9.23) 수녀에게 "자녀가 몇이냐" 현대무용보고 "정신나간 춤"(조선85.9.24)등이다. 체제경쟁의 의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같은 사례는 15년이 지난 이번 상봉보도에도 일부 있었다.
대다수 신문들이 북측 방문단의 옷차림이나 언행을 흥미위주의 시각에서 다루었으며 또 북측가족들의 '장군님'표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17일자와 21일자 기획기사에서 "남한여자 옷차림은 잡탕식" "식혜는 놋그릇에 담아야지 왜 캔에..." "때식도 잊으시고..."등 북한사람들이 한 말들을 모아 분석을 시도했지만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자칫 이질성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심결에 흘린 말을 정색을 하고 분석하는데 무리가 따를 뿐 아니라 동질성을 찾아가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채 남북한 언어-사고방식의 차이만을 강조해 결국 이질화만 부각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질성의 극복은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음을 찾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산상봉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예의 극우논리를 폈다. 19일자 사설 '상봉이 김정일 은덕이라고'에서 "이제 북에서 온 손님들이 돌아갔으니 분명히 짚어둘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산가족들이 서울서 체류하면서 이번 상봉이 김정일위원장의 노력으로 물꼬가 트인 것처럼 말한 것에 대해 반박했다. 이 사설은 지난 30년간 이산상봉을 꾸준히 추구한 것은 우리 정부였고 그것을 막아온 것은 북한당국이라고 밝히며 "우리의 노력 끝에 이뤄진 이산상봉이 오로지 김정일의 은덕이라고 믿는 국민이 있다면 사실왜곡의 극치가 아닐 수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글에는 교묘한 조선일보식 궤변이 숨어있다. 남북화해를 위한 남한 정부의 노력이 어떠 했는 지는 접어두고라도 적어도 조선일보는 그렇지 않았다. 85년 이산상봉때 방북단 귀환소식을 "평양은 異邦...엄청난 異質...15년 학교교육 4일만에 체험..."이라고 보도했던 조선일보는 이 땅에 안보상업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신문이 아니던가. 더욱이 이 글에는 매카시즘의 냄새마저 풍겨 난다. 이 글은 누구를 대상으로 쓴 글인가. 조선일보가 주장한대로 "만에 하나 우리 국민가운데 그렇게(상봉은 김정일 은덕) 생각하는 사람"인가.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수백만 부를 찍는 신문의 사설에서 우려를 표명하는가. 혹시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많다고 믿고 싶어하는 독자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부의 적을 거짓으로 꾸며내 국민을 분열시키고 현혹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경우이든 그들 표현대로 사실왜곡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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