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폐업 쫓아다니다 어느새 가을에

선배들로부터 술자리에서 가끔씩 <겨울 교육 여름 보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기자로서 재미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을 가리키는 말인 듯 하다.
그런데 여름보사가 살아났다. 재미를 보는 여름 보사가 아니라 기억하기 도싫은 여름 보사로 살아온 것이다.
악몽은 2월 17일 의사들의 여의도집회 때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 의사들은 의약분업안에 반발하며 4월초 집단휴진, 6월 하순 집단폐업, 7월 말 전공의 파업, 8월 중순 의료계 2차 폐업 등 집단행동의 강도를 높여왔다.
처음에는 의약분업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고 의사들이 "미친 X들 아냐"라는 보통 사람들과 갖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의료제도가 문제가 있고 의료보험 재정이 엉망이란 것도 의사들을 통해 알게됐다. 그래서 직격탄으로 비난하기 보다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금새 한계에 다다랐다. 의사들과 의약분헙을 어떻게 봐야할 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의사가 환자를 떤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의약분업은 지금도 햇깔린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백번 찬성이지만 당위성에 집착해 준비 없이 너무 밀어붙인 감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의약분업 연기론을 주장할 수도 없고. 준비없이 거대한 개혀을 시작한 정부가 얄밉기만 하다.
전공의들의 파업은 지금도 계속된다. 복지부 출입기자들은 그들의 주장에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개원의들과 달리 순수하다곤 하지만 마냥 그렇게만 볼 수 없을 것 같다. 희망이 없다고 막가서야 되지 않지 않느냐는 생각에서다.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물러술 줄 모르는 그들의 아둔함에 기가 질린 상태다.
오늘도 북지부 출입기자들은 열심히 타이피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
5년에 쓸 기사를 불과 몇개월에 다 썼다. 여름 휴가도 잊은채 의사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다보니 세월을 잊었다.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긋지긋한 8월이 언제가나, 전공의들아 제발 돌아오너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내일도 아침메모를 위해 전공의 대변인과 의대교수, 의사협회 집행부에 전화를 걸어 오늘 상황이 뭐냐고 물어야 한다.

- 신성식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 언론노보 288호(2000.8.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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