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15 광복절에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이라는 행사가 있어 왔는바, 올 해의 광복절 기념 특별사면에는 역대 광복절 경축사면 중 최대규모라는 수사가 꼬리를 달았다. 정부는 이 번 8·15 특별사면에 대해 한반도의 화해·협력 분위가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온 국민이 용서와 화해를 통한 새로운 출발을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였고, 언론 보도가 톱으로 다룬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에 대한 완전한 사면·복권과 역시 김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홍인길 전 청와대 수석을 형집행정지로 석방한 것이었다. 그 밖에도 과거 정권에 기생하며 범죄를 저지른 권력형 비리사범 상당수가 혜택을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특별사면으로 혜택을 받은 노동자는 불과 240명 안팎인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이 가운데 현재 감옥에 갇혀있거나 수배되어 있는 노동자 61명 중에서는 석치순 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한 사람만이 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분단 50년만에 찾아온 남북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새천년 새출발을 위해서는, 권력 맛만 보지 않았더라면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터인 권력형 비리사범에 대한 용서는 필요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 - 그래서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라고 한다 - 을 외면하고 범죄를 저지른 노동자와의 화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이 평소 갖고 있던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지난 2년여 동안 특별사면이 여러 차례 있어 왔고 소위 '국민의 정부'라고 칭한다고 해서 특별사면이 정말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알게 되었으므로 이번 8·15 특사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으리라. 정략적 고려에 따른 사면권의 남용이니, 국민 여론과 법감정을 무시하고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용납할 수 없는 조치니 하고 비판한다는 것이 이제는 입만 아플 뿐이다. 다만 앞으로는 화해니 협력이니 하는 거창한 수사를 붙이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노동자·민중을 철저히 외면하는 행위에 그러한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그냥 "이번 8·15를 맞이하여 특별사면을 실시하는데, 헌법이나 사면법 기타 다른 법률 어디에도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바가 없고 따라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데, 고유권한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므로 특사 대상은 대통령 맘대로 골랐습니다."라고 발표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광복절날 한다고 해서 민족화합 운운하며 생색낼 필요도 없다. 왜 광복절날 하냐고 누가 굳이 묻거든 과거 정권도 해마다 이 날 특별사면을 했으므로 하는 것이라고 답하면 족할 것이다.
제발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인간으로 대우해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감옥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동자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못을 박는 표현만은 삼가기를 바란다. 진정누구를 위한 사면이고 누구를 위한 용서와 화해인지 이제는 충분히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김도형 (변호사, 민번 사무차장)

/ 언론노보 288호(2000.8.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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