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머니는 황해도 곡산이 고향인 실향민이자 동생들을 북녘 땅에 두고온 이산가족이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께서 동생꿈에 가위 눌리시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이제는 90을 넘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께서는 8.15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신다. 동생들과 고향에 대한 기억도 아련히 사라져 잔영만이 남아있는 듯 싶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아들의 모습, 어느덧 초로에 접어든 아들을 얼싸안고 부모 노릇을 못한 자신을 탓하는 월북 아버지의 흐느낌. 이 모든 장면들이 내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의 할머니가 그날의 모든 기억들을 간직하고 계신다면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나는 광복절 55주년이 되는 올해 쉐라톤 워커힐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의 한 구석에 틀어박혀 어쩌면 나에게 예정된 운명일지 모를 이산가족 200명의 가족사를 쓰며 지내야 했다.
만남, 눈물, 희열 하지만 또 다른 헤어짐.
가족들이 방문단을 보내며 느끼는 허전함과 애잔함은 나의 마음 한 구석에도 자립잡는다. 물론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첫째로 남북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으로는 6.25전쟁이 남긴 민족의 아픔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남한에서 이산가족찾기 신청을 한 사람은 7만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이산 2, 3세대를 포함할 경우 이산가족은 약 700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과연 모두 가족을 만나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방문단 교환으로 가족을 만난 사람보다는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이번 상봉으로 월북 이산가족 등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상봉 가족수의 확대를 기대해 본다.
둘째로 꽉 짜여진 틀 속에서 움직이는 상봉은 상봉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했다.
상봉 며칠 전 돌아가신 어머님 산소도 가지 못하는 아들의 울부짖음, 노환으로 꼼짝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보고파서 가정 방문을 희망하는 모습 등등. 과연 진정한 혈육 상봉이라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거창한 구호 속에 이뤄지는 만남이라면 이 정도도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수 십 만원대의 호텔 잠, 거창한 만찬보다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초가집이라도 자신의 고향집에서 노모가, 누이가 손수 해주는 된장찌개일 것이다.
셋째로 상봉의 정례화다. 이산가족의 만남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더 이상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행히도 오는 9월초 비전향장기수 송환 즉시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면화소 설치 문제를 남북 양측이 논의할 예정인 만큼 이 문제는 잘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3박4일간의 열풍을 일으키고 지나갔다.
행사를 마치고 나는 한 TV에서 하고 있는 이산상봉 특집 프로를 보면서 그동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딸아이가 다가오더니 영문도 모른채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눈믈을 짓는 것은 나의 세대가 끝이길 바란다.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

/ 언론노보 288호(2000.8.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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