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동자 살인적 격무

페이퍼 무한증면시대, 디지털 마감없는시대
노조, "더이상 못 참겠다" 폭발직전



리얼타임으로 제공되는 신문업계의 인터넷 매체 창간으로 페이퍼와 디지털이 동시에 뉴스를 쏟아내는 1인2매체의 '마감 없는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또다시 신문의 증면경쟁 까지 불붙어 언론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다.
최근 중앙일보의 조인스닷컴(joins.com), 조선일보의 'IT조선닷컴' 등 인터넷 신문들이 잇따라 선보이면서 IT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으며 신문지면도 통상 56면에서 많게는 72면까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신문지면은 지난 88년 16면에 불과하던 것이 93년 이후 40면으로 늘어났으며 현재 10여년 만에 4배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매체와 지면의 양적 팽창에 비해 편집국 인력이나 취재시스템 등은 전혀 뒤따르지 못하고 있어 기자 1명이 2개 매체에 종사하면서 많게는 하루 14시간까지 근무하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 디지털신문 'Cyber중앙(주)'의 명칭을 '조인스닷컴'으로 변경하면서 같은 이름의 섹션을 신설했고 이에앞서 j머니 섹션을 발행, 48면에서 56면으로 증면(주 312면)했다. 한겨레도 제2섹션 '한겨레ⓔ'를 발간하면서 32면에서 40면 체제(주 232면)로 들어섰으며, 동아일보 역시 경제섹션을 8면에서 16면으로 늘리는 등 48면에서 56면으로 증면했으나 경제부 신규인력채용은 2명뿐이었으며 나머지 7명은 타부서에서 충원했다.
한국경제는 최근 72면, 매일경제는 60면을 발행했으며 조선일보도 56면 체제로 돌아섰다. 이같은 대책없는 증면과 관련, 조선일보 노조는 최근 노보를 통해 '인련난과 회사의 무책임에 대해 노동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 직전에 왔다'고 경고하면서 사회부는 1명이 5개 시리즈에 동원되는가 하면 문화부는 일주일에 41개면을 제작하는 등 기자들의 하루 근로시간이 14시간을 넘는다고 회사측에 대책을 촉구했다.
신문학계에서는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정보생산 능력, 독자들의 정보욕구 등을 감안할 때 단행본 한 권에 해당하는 무분별한 정보의 과잉이 과연 필요한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인력충원 및 재배치, 지면특성화 방안, 취재시스템 개혁 등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생략한 주먹구구식 증면은 지면의 황폐화만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무차별적인 증면은 기사보다 광고가 더 많은 기현상을 초래하고 있으며, 독자들의 현재 지면수에 대한 불만 여부, 또는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없이 진행되고 있어 언론사주의 상업적인 경쟁논리에 언론노동자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기자 1명이 시리즈 5개
하루 14시간 초인적 근무
폭발직전 살인적 노동환경

쓰러지는 동료 지켜보며
우리는 파업을 생각한다

'갈기머리 이상훈(보스턴레드삭스) 메이저리그 첫 등판서 뼈아픈 홈런'
3월3일 오후 1시21분, 중앙일보 인터넷 신문 조인스닷컴에 뜬 기사다. 중앙일보 체육부의 한 기자는 경쟁 언론사 보다 20분 빨리 이 기사를 올려 회사가 수여하는 '이주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 사례는 21세기 한국 신문기자들의 생존법칙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언론사들이 인터넷 신문을 잇따라 창간하면서 기자는 1인2매체에 종사하게 됐다. 신문기자도 마감없는 시대로 진입했다. 페이퍼는 사상최대 60면 체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언론노동자는 페이퍼라는 강과 디지털이라는 바다를 오가며 24시간 깨어있기를 강요받고 있다. 유사이래 최악의 살인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기자들은 벤처로 꿈을 찾아 떠나거나 기계의 부품처럼 혹사 당하다가 녹슬어 쓰러지고 있다.
조선일보 노보는 초인적인 노동현장에서 허덕이는 부서별 상황을 소개하면서 '인력난과 회사의 무책임으로 조합원들이 누적된 불만을 폭발하기 직전'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노보에는 과로로 입원한 두명의 조합원을 돕자는 얘기도 함께 실려있다.
조선노보는 '회사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상황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사태가 여간 심각한게 아니다. 인력부족 문제가 한계점에 달한 가운데 인사고과 기사량 성적표가 배포되는가 하면 지방본부에는 취재차량 철수지시가 내려져 조합원들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파업해야 되는 것아니냐, 각 기수별로 집단행동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며 노조사무실에 항의방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부서별 환경은 더욱 처참하다. 사회부는 1명이 5개시리즈에 동원되고 있고, 문화부는 일주일에 41개 지면을 제작한다. 스포츠부는 하루 14시간 30분을 일한다. 올들어 10명이 떠났는데 인력을 충원하기는 커녕 편집국 내에서 이리저리 부서를 옮기는 조삼모사의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조선노조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회사측의 성의있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KBS노보는 보다 원색적이다. '아예 죽여라 죽여'라는 제목의 글은 '작년 대자보는 대부분 방송법이었는데 지금은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구조조정, 명퇴로 사람은 줄고 방송프로세스는 복잡해지고 업무량은 바가지로 늘어나 죽어나는 것은 조합원이다. 급기야 모 지역총국 PD들이 현상황 아래서는 도저히 방송이 불가능하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총국은 과로로 지난해 사망한 김철환PD의 공백조차도 채우지 못한채 도저히 불가능한 것 같은 업무를 강행하고 있다. 이제 어떡하나. 사람을 주던가, 아예 죽이던가 이제 정합시다'는 삭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계는 3D업종으로 전락한지는 이미 오래다. 사회정의의 사명감은 사라지고 과중한 업무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곳에 이제 인재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현실이다. 독일 언론노동계의 이슈는 주4일 근무제 관철이다.
사상최악의 살인적인 언론노동환경을 헤쳐나가면서 인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언론노동자의 총체적인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277호 1면,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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