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전문기자의 소원

"하늘의 뜻을 알 수만 있다면...

가뭄이나 홍수때면 하늘만 쳐다보고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 일이다.
추위나 더위가 심하면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셔보기도 한다.
날씨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기 위해서다.
방송을 시작한 82년 가을 이후 20년 가까이 되풀이된 습관이다.
똑같이 두어진 바둑 대국이 없듯이, 지금까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느껴보지 못했다.
날시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그렇게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아 있는지 놀랄 때가 많다.
늘 우리나라를 놓고 여러 공기덩어리들이 세력다툼을 벌인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한 승부는 북서쪽의 찬공기와 남동쪽의 더운 공기가 늦여름의 한판 대결.
승부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피해는 커진다.
지난 8월 말 6일 동안이나 전국을 강타했던 집중호우도 바로 이들 공기덩어리의 세력다툼 때문이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비구름이 계속 만들어졌고 수증기를 몰고온 태풍이 중국에 멈춰서 싸움을 부채질하는 바람에 대결이 길어지면서 군산지방에는 6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누구는 남북상봉이산가족들이 흘린 눈물이라고도 하지만 서정적으로 다가서기에는 피해가 너무 컸다.
가을의 청명한 날씨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에서 다가선 따뜻한 공기가 몇 일 우리나라에 머물다 떠나면 어김없이 남쪽과 북쪽의 공기덩어리가 그 자리를 메꾼다.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는 미덕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가을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올 한해 각종 이익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막가파식 다툼을 지켜보면서 유난히 가을이 기다려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SBS 과학정보팀 기자 공항진

/ 언론노보 289호(2000.9.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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