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이동 취재하느라 이번 추석도 길바닥에서 쇱니다


매년 이맘때면 누구나 입에 올리는 말이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만 같으라고? 정말 추석이 그렇게 좋을까? 산더미같은 차례음식을 만들어야하는 주부들이 우선 "추석은 싫어"라고 외치겠지만, 방송사 사회부 기자들에게도 추석과 설날은 별로 반갑지 않은 명절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들 다 노는데 나만 못노는 "그들만의 명절"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방송사 사회부는 이른바 특별 근무표라는 것을 짠다. 열명 남짓한 근무인원이 하루에 너댓명씩 조를 짜서 연휴 내내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공원묘지, 그리고 하늘 위에서 귀성객들의 모든 움직임을 취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명절 연휴기간에는 관공서와 기업들이 다 쉬기 때문에 뉴스의 절반 이상을 사회부가 만들어내야 한다. 귀성행렬과 성묘객 스케치는 기본. 시간대별로 고속도로에서 어디가 밀리는지 어디서부터 뚫리는지 알려줘야 하고, 그 중 일부는 헬기를 타고 전국의 도로상황을 살펴야 한다. 그 뿐이랴. 전용차선 위반하는 승용차도 고발해야 하고, 고향에 못간 실향민도 찾아가야 하고, 심지어 텅빈 서울도심의 모습까지 취재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사나흘 연휴 동안 정작 쉬는 날은 하루 정도 밖에 안될 때도 많다. 지금은 사회부를 떠났지만 나 역시 입사후 5년이 되도록 추석연휴 동안 차례상에 절 한번 제대로 못해본 적이 많았다.
추석연휴 근무 중 가장 피곤한 것은 역시 톨게이트 중계차라고 하겠다. 물론 톨게이트 기사는 일종의 공식에 따라 쓰기 때문에 취재에 어려움은 크지 않다. 도로공사 상황실에서 나온 귀성객 추산자료와 구간별 정체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면 된다. 하지만 새벽6시부터 마감뉴스까지, 거기에 라디오 뉴스를 포함해 하루에 10여 차례 이상 생방송을 해야하기 때문에 단 한시간도 맘 편히 쉴 틈이 없다는 게 문제다. 헬기취재도 만만치가 않다. 보통 한번 올라타면 가장 밀리는 구간을 찾아 최소한 너댓시간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특히 나처럼 멀미를 잘하는 체질이라면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야말로 고달픈 연휴인 셈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명절 연휴에 뉴스라고는 이것뿐인데. 이른바 민족의 대이동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민족이 대이동을 한다면 당연히 자세히 보도해줘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고민없이, 무작정 해오던 대로, 고속도로의 차량행렬만 보여주는 명절뉴스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각종 첨단문명의 이기를 통해 교통상황 정도는 아무때나 간단히 체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도, 뉴스의 절반을 어디가 밀리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때워버린다면 전파낭비, 시간낭비가 아닐까. 이번 추석때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박성제 MBC 보도국 기자


/ 언론노보 289호(2000.9.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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