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대놓고’ 민주주의 가치마저 훼손하나

한동안 ‘삼성공화국’ ‘불법도청’ 논쟁으로 시끌벅적했던 한국사회가 보수신문들이 만들어낸 이른바 ‘강정구 교수 필화사건’으로 인해 완전 평정됐다. 민실위는 우선, 정치권이 헐뜯기 차원에서 내뱉는 “정치적 계산” 운운의 말싸움을 차치하더라도 시급히 결론 지어야할 사회의제들이 이번 시비로 인해 장시간 지연되고 있는 점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지금 벌이고 있는 사상논쟁은 그야말로 ‘부화뇌동’ 격이다.
민실위는 이번 시비가 기왕 시작된 마당에 일부 보수신문에 의해 올바른 ‘논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강 교수의 글은 우리사회의 성숙도로 볼 때 이제는 얼마든지 용인 가능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보수신문은 다짜고짜 옛 버릇 그대로 ‘매도’를 일삼았다. 강 교수가 민교협에 기고한 두 번째 글도 마찬가지다. 문화일보를 시작으로 보수신문들은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선정적인’ 대목만을 뽑아 보도했다. 보수신문들이 조금만 지각이 있었다면 이번 시비가 ‘제2의 필화’ 사건인 장시기 교수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수신문의 이러한 보도태도는 그들이 늘 주장해 왔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보수신문들은 다원성도 다양성도 무시한 채 특정인을 ‘빨갱이’로 모는 마녀사냥 게임을 벌이고 있다.
곁가지에 불과했던 ‘지휘권 갈등’을 키운 것도 그렇다. 보수신문은 은근슬쩍 자신들의 시각을 국민감정으로 포장해 그렇지 않아도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옹호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도 검찰은 국민의 공복이지 굴림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보수신문은 독립 운운하며 인식구속 문제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편 가르기로 희석시키고 있다. 사실 강 교수의 구속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일 아닌가.
보수신문은 더 이상의 소모적인 시비를 중단해야 한다. 보수신문 편집자들이 원하는 것이 사회갈등을 부추겨 세를 결집하고, 희대의 악법인 국보법 논쟁을 또다시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미 그 의도는 많은 독자들이 간파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민실위는 차제에 보수신문에 속해 있는 동료 기자들에게도 기자정신을 회복하라고 권고한다.
오늘날 삼성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까닭은 몇몇에 불과한 총수 일가가 우리가 믿고, 키워왔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서슴지 않고 훼손했기 때문이다. 지금 건강한 사회적 논쟁을 가로막고 있는 보수신문들이 유념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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