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 3사 동시 방송- 한국 언론의 저급함 보여줘시드니 올림픽 열기가 뜨겁던 지난 9월 23일(토) 오후 5시부터 1시간 가량 KBS, MBC, SBS 방송3사는 똑같은 내용의 대통령 관련 방송을 내보냈다. 내용은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모리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한 것.이는 지난 9월 3일 방송의 날 기념 '대통령 3사 합동녹화방송'이 나간지 20일만에 또다시 3사 공동 동시 방송을 한 것이다. 주최국인 일본에서도 NHK외에는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일본보다 채널 수가 반도 안되는 한국에서는 3사가 동시에 같은 방송을 했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대통령 관련 방송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로그램의 선택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문제는 그 기자회견의 성격이 생방송을 할 정도로 특별한 게 없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모리총리가 거의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읽었을 뿐더러 중간에 통역이 들어와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 게다가 한국 시청자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내용에 있어서도 재일교포의 참정권 문제나 북일 교섭 문제에 대해 일본 총리가 완곡하지만 강력하게 거부의사를 밝혀 방송의 의미를 떨어뜨렸다. 또한 일본에서 적극적으로 나온 한일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심화되는 무역역조를 의식한 한국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성과라고 할 만한 건 정보기술산업을 공동 개발하고 한일 투자 협정을 연내에 체결한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성과가 방송3사가 동시에 생방송을 할 만큼 가치 있는가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전후한 방송3사의 보도태도는 '70억 달러 유치'(21일 KBS, MBC), '지금이 대한 투자 최적기'(22일 KBS), '일본 전용공단 조성'(22일 SBS), '정보기술협력'(23일 KBS, MBC) 등 세일즈 외교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려는 태도가 뚜렷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한일간의 '온도차, 고랑, 구멍'이 있다는 등 '대단한 성공은 아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한일투자협정에 대해서는 '한일간의 발전 격차가 더욱 커지고', '일본투자 자본에 대한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국내의 비판 여론도 있었다(민주노총 등, 종속적 한일투자협정 체결 저지와 김대중 대통령 방일 규탄 기자 회견).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는 방송3사 어느 한 곳도 지적하지 않았다.또한 나중에 밝혀졌지만 김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모리총리가 한국민을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 '과감한 또는 무례한' 발언, 신가이드라인을 통해 군사대국화를 꾀하는 일본자위대, 그리고 IMF위기 때 가장 먼저 대규모로 빠져나간 일본자본의 행태에서 경제 종속에 이은 정치군사적 종속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이번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둘러싼 방송3사의 보도는 단순히 대통령이니까 모든 방송이 생방으로 동시에 방송하고, 또 그 내용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는 후진국형 언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의 개막식 행사중계로 일본 NHK의 7시뉴스가 방송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한 시청자가 이에 항의해 한 달치 시청료를 감면해 주었다는 일화가 들린다. 정권의 눈치보다는 시청자 주권에 대한 깊은 인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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