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보 복간특집 「오늘의 우리언론」 노조위원장 초청 좌담회

오염된 상업주의가 '사이비 저널리즘' 양산
광고늘자 인력충원없이 무차별 증면
경마식 선거보도 지역감정 대대적 홍보
정론 회복·정체성 확보로 바른언론 기치 세워야


다시불붙은 증면경쟁
인력난 방치 72면도 발행
지역감정 유통책임
사명감 퇴색 인재가 오지않아
산별노조 건설로 연대필요


언론노련은 언론노보 복간 특집으로 다시 불붙은 증면경쟁, 총선 공정보도문제, 언론산별노조 건설 등 2000년 봄 우리 언론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좌담회를 통해 살펴봤다. 좌담회는 3월16일 언론노련 회의실에서 진행됐으며 정병준 언론노련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았고 강성남 대한매일 위원장, 문성웅 문화일보 위원장, 김민영 전남일보 위원장이 참석했다.

때 : 2000년 3월 16일 오후1시
장소 : 언론노련 회의실
참석자
사회 : 정병준 언론노련 사무처장
토론 : 강성남 대한매일위원장
문성웅 문화일보위원장
김민영 전남일보위원장


사회 : 오늘 한국 언론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만 증면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총선보도문제도 그냥 넘길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먼저 신문 쪽 증면얘기를 해보죠. 조선일보가 창간때 80면을 발행했고 중앙일보도 56면 상시발행체제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경제가 72면, 매일경제도 60면 넘게 발행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문성웅 : 그렇습니다. 중앙일간지들이 매일 단행본 한권을 쏟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80년대 중반까지 16면하던 지면이 6∼7년뒤 2배로 늘어났고 최근들어 처음으로 56면체제를 돌파하면서 다시 4배로 폭증하는 기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강성남 : 문제는 과연 독자의 정보욕구 때문에 신문이 증면을 하는 것이냐 인데요, 현실은 광고가 증·감면을 좌우한다는 것이죠. 요즘 무한대로 늘어나는 신문지면은 광고물량의 급증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2∼3일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광고를 받아 싣기위해 신문사들이 대책없이 지면을 늘리고 있습니다.
김민영 : 지방신문의 증면원인은 광고의 증가에 있는게 아닙니다. 특정 1개사가 물량적 차별화를 위해 증면을 단행하면 뒤처지지 않게 따라가는, 부화뇌동식 증면행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성웅 : 요즘 편집국에는 "죽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조선노보에 언론노동자가 하루 14시간 30분 일한다는 어느부서의 얘기가 실렸던데 사실입니다. 살인적인 노동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꼴입니다. 인력과 취재시스템은 방치한채 증면만 계속되니 기자들이 기계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엄청난 꿈을 안고 뜨거운 가슴으로 들어왔던 신문사에서 좌절과 절망을 맛보고는 머리가 텅 빈 채 기계의 부품처럼 살다가 녹슬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민영 : 그래서 떠납니다. 지방신문에서도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새로운 미래를 찾아 많게는 5∼6명씩 무더기로, 적게는 한두명씩 꾸준히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직하는 경우나, 보다 대우가 좋은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서울행이 많습니다. 서울쪽에서 벤처기업 등으로 대거 이동하면 부족한 인력을 지방에서 끌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강성남 : 언론고시는 옛말입니다. 환경이 그렇다보니 대학을 갓 졸업한 유능한 인재들이 언론계라는 3D업종에 발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정의감이나 사명감도 추락하고 있습니다.
사회 : 업친데 덥친격으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자들은 페이퍼와 디지털이라는 2개매체에 종사하는 꼴이 됐습니다. 드디어 신문기자도 '마감없는 시대'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월급을 두배로 주든지, 다른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일본의 경우 언론사 안에 사우나실, 수면실 시설까지 갖추고 있던데 부럽기 보다는 불쌍한 생각이 앞서더군요.
문성웅 : 리얼타임 뉴스까지 제공해야 하는 현실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디지털의 마감은 기자가 24시간 깨어있기를 강요합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단위노조의 힘으로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을 깨 나갈수 없습니다.
사회 : 대략 문제점은 독자를 외면한 언론사의 사익적 판단, 인력충원과 시스템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무리한 증면으로 지적되며 디지털 까지 겹친 근무환경의 악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강성남 : 언론노동자의 연대입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노동의 착취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이 연대하여 단위조합을 굳건히 꾸리고, 또 단위노조는 연맹과 연대하여 노조의 상하부구조를 탄탄히 마련하여 공동대처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선 산별노조의 건설이 효과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민영 : 문제의 해결책은 초발심(初發心)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질적인 차별화이며 정론의 기치를 높이 세우는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나 르몽드 같은 외국의 사례가 극명한데 무차별적인 물량공세 보다는 정확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라 할 수 있죠.
문성웅 : 덧붙여 각 언론사들이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내가 남에게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 예컨대 한겨례의 교육공동체부 신설 등은 신선하구요, 문화일보의 지질의 변화를 거기에 갖다 부칠수 있는지 모르지만, 신문의 자기 색깔갖기가 중요합니다.
사회 : 노동자들이 숲을 바라봐야 할 시기입니다. 자사이기주의라는 나무에서 빨리 내려와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종업원 의식에 얽매어 있는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하루빨리 이행하는 것이 사경을 헤매는 언론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산별노조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고 머잖아 거대한 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화제를 바꿔 이번 총선보도 역시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강성남 : 이번 지역감정 문제의 기폭제로 작용한 '영도다리' 발언을 직접 들은 청중은 불과 수천명이었으나 언론보도 이후 이 말을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몇시간만에 언론은 수천명의 청중을 수천만명으로 확대시키며 결국 전국민을 상대로 지역감정을 '홍보'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김민영 : 언론이 지역감정 조장발언을 여과없이 보도하는 저의에 상업적 속셈이 깔려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언론은 지역감정 발언을 주요뉴스로 침소봉대하는 한편 논평을 통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전형적 보도태도를 취하면서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꾸짖으면서 뒤로 부채질하는 이같은 보도행태는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본질적 목적은 외면한채 뉴스의 판매에만 급급하는 오염된 상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문성웅 : "우리 신당이 실패할 경우 부산시민 모두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라는 말이 과연 얼마나 뉴스가치가 있는지를 곰곰히 되새겨 보면 언론의 이중적 상업주의 행태는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지역감정 발언을 전혀 보도하지 않을 것이냐,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보도할 것이냐 논란이 많은데 가급적 보도를 자제하면서 매서운 비판을 겸해야 한다고 봅니다.
강성남 : 일부언론의 지역감정 보도는 선거판을 양당구도로 끌어가며 추후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오염된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문성웅 : 같은 맥락에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많은 국민들에게 하나의 복음이었는데 최근 혼탄선거의 주범을 정치권에서 유권자쪽으로 몰아가면서 본질을 흐리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판을 좌우하던 언론의 권력을 시민단체 쪽에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적 보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김민영 : 선거를 앞두고 많은 언론들이 보도준칙들을 만든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선거때마다 되풀이되는 추상적 선언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보위 등에서 보다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강성남 : 덧붙여 1여3야 위주의 보도를 통해 민주노동당 등 소규모 정당을 아예 배제하는 행태, 총선에서 후보자의 움직임은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이인제, 이회창, 김종필씨 등 보스중심으로 보도하는 관행도 고쳐져야 합니다.
사회 : 오늘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은 바로 어제의 문제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시간동안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했지만 여전히 일회성의 개별적인 목소리에 불과했으며, 관행은 고착화되어 오고 있습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재삼 강조하다시피 언론노동자의 굳건한 연대 뿐입니다. 지금은 전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산별노조의 건설은 어떤 문제점에 대해 언론노동자 전체가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27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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