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매각이 무산되면서 경제가 또 한차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바닥을 모를 듯 떨어지는 증시에 대한 기사, 기업 자금줄이 막혔다는 기사 등이 다시 신문들에 주요 기사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97년말 외환위기 때와 같은 위기가 다시 올 것인지를 두고 전문가들이 논란을 벌이는 모습도 신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미 다시 경제위기와 왔다는 주장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외환위기를 연상하게 하는 기사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기업의 민영화, 해외매각, 이른바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다시 신문을 채우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포드의 대우차 매각 포기 발표 이후, 외국에 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지상 과제같아 보인다.이런 기사들로 채워지는 신문지면만으로 보면 한국의 신문사들은 또는 기자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철저한 신봉자들로 보인다. 어디에도 이런 방식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는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어서가 아니다.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3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8일 한강시민공원에서 4만여명이나 되는 조합원들이 모여 공기업 민영화와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공공부문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회 참석자 숫자로 보나, 그동안 연대집회를 하지 않던 두 노총이 함께 집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보나, 이 집회는 기사 가치가 충분했다.하지만 중앙일보가 사회면에 비교적 크게 사진기사로 처리했고, 경향신문이 역시 사회면에 1단 기사로 실은 것 등이 고작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날 행사를 외면했다.또 오는 20~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아셈)를 계기로 국내외 진보단체들이 세계화 반대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 서울 중앙대에서 연합공연을 벌인 데 이어 토론회, 아셈 민간포럼,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반대집회 등 각종 행사를 오는 27일까지 벌일 예정이다. 특히 이번 반대집회는 지난해 11월말 미국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 반대시위를 시작으로 올해 초 워싱턴과 최근 프라하로 이어지면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은 전세계 민간단체들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을 잇는다는 기획 아래 준비되고 있다.하지만 한겨레신문이 10일치 34면에 소개기사를 실은 것을 빼면, 이들의 움직임을 우리 신문들에서 찾아볼 수 없다.특정 신문사가 자신들의 신념을 갖는 것 자체는 비판할 일이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중요한 사명은 생각이 다른 이들의 주장 또한 충분히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물며, 다른 주장을 펴는 이들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자일 경우, 이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것은 언론의 윤리에 해당한다.지금 상황으로만 보면, 오는 20~21일 서울 강남에서는 시애틀이나 프라하 때보다 결코 약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와 세계화 반대자들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그 때 과연 우리 신문들은 어떻게 이를 보도할까? 노동계나 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과거 보도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시위대의 폭력만을 부각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과연 왜 거리고 나섰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에도 관심을 보여줄 것인가?이번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보도는 한국 신문들의 수준을 보여줄 시금석이 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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