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쉽고 분명히 써야 한다  
[민실위보고서]

                                                             2006년 06월 07일 (수)


“기사는 쉽고 분명하게 써야 한다.” 언론사에 갓 들어온 수습기자가 선배한테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말이다. 하지만 쉬운 기사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기자가 잘 모르면 보도자료를 베끼거나 취재원의 발표를 옮기는 수밖에 없다. 이런 기사는 어렵다. 딱딱하고 행정용어나 낯선 개념이 그대로 등장한다.

독자 처지에서 보면 한미FTA는 어려운 뉴스다. 게다가 요즘은 월드컵 열풍에 휩싸여 독자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 따라서 중요하지만 재미없는 한미FTA 기사는 쉽고 구체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지면에 등장하는 한미FTA 기사는 어려운데다 말 타고 산 쳐다보는 것 같다. 지난 5일 막 오른 한미FTA 1차 협상 기사 곳곳에는 ‘암호’가 출몰한다. 얀 포워드 규정, 특별세이프 가드, 신금융서비스, 존스 액트, 내국민대우, 관세할당제도(TRQ), 항만물품취급 수수료, 국경간 서비스 무역, 특송화물 통관…. 관련 업무를 맡은 관료나 전문가에겐 익숙한 용어이겠지만 독자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한미FTA 1차 협상 보도는 쟁점을 두고 미국의 입장은 이렇고 한국의 입장은 저렇다는 식의 피상적 쟁점 해설에 그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이 수입차에 대한 차별이라며 자동차세 기준을 배기량에서 가격으로 바꿀 것을 제시했다고 보도할 뿐 왜 미국이 이런 주장을 하는지, 국내 자동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개성공단 생산품의 한국산 인정을 놓고 한-미 주장이 맞서고 있다는 기사만 있을 뿐 개성공단 생산품 특혜 관세 주장의 배경이나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 왜 미국이 이를 거부하는지 등에 대한 해설은 빈약했다. 사회적 공론장을 자임하는 신문들이 ‘제2의 개항’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한미FTA 기사를 이렇게 짧고 얕게 다루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런 보도 태도는 개막 몇 달 전부터 카운터 다운을 하며 온갖 보도를 쏟아내는 월드컵 보도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한 포털 광고에서 장을 보던 아주머니들이 “토고의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가 190cm의 큰 키로 제공권을 확 휘어잡는데, 골 결정력도 예술”이란 전력분석을 했다. 언론이 월드컵 섹션까지 내며 지면을 도배한 덕분에 요즘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축구 전문가가 됐다.

온 국민의 축구전문가화에 성공한 언론이 그 열정과 관심의 반의 반만이라도 한미FTA 보도에 쏟기를 부탁한다. 기자라면 13일 토고전 첫 승만큼이나 한미FTA 1차 본협상도 중요하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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