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MBC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좀...

미디어오늘 기고문



전규찬 김승수 교수가 MBC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 이후 MBC는 변하는가? 결과적으로 개미다리만큼의 변화도 없다. 아니 훨씬 더 그 증세가 악화되고 있다. 이런 것도 지상파라고, 무료보편적 방송서비스라고 지지해야 하나? 이런 것도 지상파라고 생존의 대안을 제시하며 각성을 촉구해야 하나?

나는 불만이다. 전규찬 김승수 교수에 대해. 왜 MBC만 갖고 당신들의 애정을 흠뻑 흠뻑 쏟아내나! "[김승수] 위기의 MBC…살아남으려면? [전규찬] MBC, 이제 사랑은 끝났다?"와 같은 흘러간 노래로 이미 떠나버린 MBC를 불러 봐도 그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데...왜...이렇게 해야 하나!

보라. MBC 특히 보도국의 배신을.

어제 밤인 12일 SBS는 뉴스 첫머리에서부터 월드컵 관련 뉴스를 내보냈고, 총 22건의 뉴스 꼭지 가운데 14건을 월드컵 뉴스로 도배했다. 민영방송이다. 봐 주자. 공영방송 보도국의 꼬락서니를 보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KBS 9시뉴스는 이날 총 21개의 뉴스 꼭지 가운데 8개(38%)를 월드컵 관련 뉴스로 채웠다. 한미FTA와 관련해선 달랑 1건이다. 역시 공영방송! MBC를 보면 이렇게 '환호'(?)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나마 MBC보다 반밖에 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MBC 뉴스데스크는? 총 29개 뉴스 중 17개(58.6%)의 월드컵 뉴스를 전했고, 1개의 한미FTA 뉴스를 내보냈다. 이것도 공영방송의 메인뉴스인가? 공영방송 보도국이 할 짓인가? 도대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벌써 몇 개월째 이러고 있다.

그렇다면 내용을 살펴보자. 어제는 참으로 중요한 날이다. 일단 한미FTA 1차 본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분석해야 할, 짚어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많은 과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3사의 저녁종합뉴스는 달랑 1꼭지씩을 떼웠다.

가뭄과 홍수로 기근이 일어나서 유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도 해도 정부가 택도 없는 외교통상정책을 펼쳐서 농민이 거덜 나고 도시에 노숙자가 범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곧 현실화될 수 있는 한미FTA협상. 이 협상의 1차 본 협상이 끝났는데도 이들은 매우 '어려운 용어와 아주 간단한 리포터 1꼭지'로 대신했다. 이 꼴을 보며, 방송사 보도국의 시청자에 대한 배신을 넘어 반역이라고까지 평가하면 '오바'일까.

한미FTA뿐만 아니라 독도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독도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일 EEZ경계획정회담'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의 '독도망언'이 한 마디라도 있을 때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는 지상파 보도국이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계획정회담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3.1절이 아니고 광복절이 아니라서 그런가?

이 뿐만 아니다. 단돈 1만원에 울고 웃을 수 있는 이 땅의 배고픈 민중의 주요 관심사인 최저임금제에 대해도 연일 쟁점이 일고 있지만, 지난 8일부터 방송사들은 아예 모르쇠로 일관한다. 노동계는 87만7천800원(시급 4천200원)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용자측인 경총은 현재 수준(70만600원, 시급 3천100원)으로 동결하거나 100원이 오른 시급 3천20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노사간 접전이 예상되는데도 방송사 보도국은 '남의 일'일 뿐이다.

강남에서 나고 커서 여의도에서 일하는 기자, 여의도에서 나고 커서 여의도에서 일하는 기자를 통칭 '강남8학군 기자'라는 상징어를 사용한다. 이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연봉 1억 원이 넘는 방송3사 보도국 데스크들의 눈에는 최저생계비가 아주 오래된 옛 이야기쯤으로 들리겠지만, 여전히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그렇다고 월드컵 뉴스가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것도 아니다. 뉴스는 시청자에게 정보를 주기보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전문자문단'의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뉴스가 한미FTA 협상단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월드컵 팀의 전문자문단까지 한다면야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분통이 터진다. 프레시안의 지난 11일 일요일 오후 1시43분에 올린 기사를 보면 방송3사의 보도국, 특히 MBC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은 당장 잘라야 할 지경이다. 내용인 즉슨 이렇다.

MBC보도국의 권희진 기자는 미국-칠레 FTA가 칠레에 미친 영향을 취재하기 위해 칠레를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칠레 취재 계획을 한동만 외통부 통상홍보기획 팀장에게 말하게 된다.

한동만 팀장은 권 기자가 칠레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안 다음날 그에게 칠레에서 취재를 도울 코디(현지 가이드를 일컫는 언론계 속어)의 이름을 묻는다. 권 기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해주지 않는다. 그랬는데도 칠레 가이드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권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칠레 주재 한국 대사관의 김모 참사관이 자기에게 '어떤 기자가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 이름을 대라"고 강요했음을 전해 준다.
  
김모 참사관은 심지어 이 가이드에게 권 기자가 칠레에 도착하면 아침 9시까지 대사관에 출두해서 체류하는 동안 매일 무슨 취재를 할지 사전에 보고하고, 무슨 취재를 했는지도 사후에 보고하라고 말했다는 것.

한밀FTA 1차 본 협상이 끝난 9일 밤늦은 시간. 한미FTA 한국정부 협상단의 마지막 브리핑이 있었던 워싱턴 인근의 모 호텔. 브리핑이 시작되기 20분 전 외교통상부의 협상홍보 담당자 한동만이 들어서자 권 기자는 "왜 취재를 방해하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한다.

권기자: "왜 취재를 방해하느냐. 정부는 뭐가 그리 구리기에 언론통제까지 하나!"
한팀장: "취재에 협조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권기자: "언제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요청하지도 않은 취재협조를 했나! 세금이 남아나는가!"
한팀장: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드리는 차원이다."
권기자: "왜 내가 누구를 인터뷰하는지, 언제 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를 보고해야          하느냐!"
한팀장: "모르는 일이다. 확인해보겠다"
권기자: "어떻게 5공 때나 있었던 언론통제가 21세기에 버젓이 일어날 수 있나!"

MBC 기자가 한미FTA협상 현장에서 한국협상단으로부터 이렇게 '당해도' 이와 관련된 기사 한 토막 없는 것이 MBC 보도국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 MBC보도국과 구성원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대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을 내버려 둘 것인지 말 것인지를. '미디어오늘' MBC 출입기자는 꼭 이들의 입장을 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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