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 맘대로 하세요...그러나!
-정치권의 방송위원 인선을 보며



방송위원회 인선을 두고 조선일보 심기가 불편하다. 27일 오늘 자 2면에서 불편한 심기를 <3기 방송위원 추천단계부터 시끌>이라는 제목으로 정말 오랜만에 언론노조 성명서를 인용한 기사를 보도한다. 작은 제목까지 <언론노조, 일부 실명 거론하며 반대>했다고 뽑아 준다. 언론노조의 성명서가 오랜만에 조선일보 입맛에 맞았다.  

그리고 평소에 조선일보 지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던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과 민주당 손봉숙 의원까지 등장시켜 '나눠먹기식 밀실인선'이라고 비판하며 절차의 투명성을 문제삼아 방송위원 3명을 인선한 문광위 표결에서 기권했다고 전한다.

중앙일보 출신 인사가 노무현정부와 한나라당의 추천으로 정부 요직에 계속해서 진출해서 그런지 조선일보의 보도태도가 요상하지만, 최근 들어 조선일보의 언론계 관련 보도 중 가장 잘 쓴 기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조선일보마저 '비꼬는 듯' 보도한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의 방송위원 인선! 정부여당은 정권말기의 보은인사에 목메고 있고, 야당 한나라당은 정신장애인과 족벌언론의 앞잡이를 추천하는 등 차기 방송위원회를 이끌 방송위원 선임과정은 한 마디로 '개판'이다. 방송위원회는 방송진흥정책과 규제 등에서 전권을 가지고 있다. 방송사 한 둘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기본이다.

2004년 지상파 재허가 국면에서 보았듯이, 경기 인천지역의 민영방송이었던 iTV가 방송위원회의 한 쪽짜리 문서에 의해서 세상에 사라졌다. SBS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방송위원들의 심기를 살펴야 했고, 그 결과 수 백 억 원의 사회기여금을 약속하고, 전면적인 내부 제도개혁을 추진한 끝에 겨우 SBS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 방송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방송위원회. 위원장은 장관 예우, 상임위원은 차관예우를 받는 방송위원회 3기가 출범하자마자 6월과 7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KBS 사장을 추천해야 하고 EBS사장을 임명해야 한다. 또 KBS 이사회,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그리고 EBS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성영소 이춘발 전 노무현 대통령후보 특보를 방송위원으로 내정했다고 전해진다. 이미 노대통령후보 특보 출신이 KBS사장에 내정됐다가 KBS 내부 구성원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도중하차한 일이 불과 3년 전.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했으나 방송이 갖는 핵심가치 중 하나인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시민사회와 KBS 구성원들이 반대한 결과였다. 그런데 정권 초기에 '실패'한, 특보출신들 방송계에 밀어 넣기를 정권 말기에, KBS 사장자리을 추천하고 EBS사장을 임명하는 그리고 MBC사장을 뽑는 이사진을 임명하는 자리에 앉히려 한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손사래를 치겠지만, 결국 '정치권력을 쥔 자들이 방송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 '정권말기 보은인사'라고 비판해도 할 말 없게 된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더 심하다. 3명을 추천했는데 중 2명이 하자 있는 인물이다. 강동순 KBS 감사와 전육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바로 그들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26일 성명에서 강동순씨를 이렇게 평가했다.

"강동순 씨는 현재 KBS 감사로 있으면서...KBS내부 문서를 국회의원과 수구보수신문에 유출한 장본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는...병역면제를 둘러싼 의혹이다....그는 1965년 ‘무종재신체검사대상자’로 판정되었다가 1966년󰡐정종 병역면제 질병 정신신경증적 장애󰡑로 최종 면제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자녀 병역문제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던 한나라당이 이제는 지방선거까지 싹쓸이 한 마당에 더 이상 '병역의혹'은 신경 쓰지 않는 정당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언론노조는 또 전육씨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전육 씨는 중앙일보그룹의 73개 계열사 중 (주)중앙방송의 사장을 얼마 전까지 지냈고 아직도 그 회사에 몸담고 있는 인물. 그는 19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수시로 대선 정국 관련 정보를 홍석현 당시 대표이사에게 보고, 이 정보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 전달된 것.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에 담긴 이른바 X-파일에 이런 내용들이 자세히 담겨 있다....중앙일보는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제한제의 적용을 받는 59개 기업집단에 선정, 계열사를 무려 73개 가진, 자산이 1조2천 억 원이나 되는 재벌이 된 것이다. 전육 씨가 대표로 있던 (주)중앙방송은 케이블 방송 채널만 3개를 가지고 있고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그룹이 지상파 TV 방송을 갖는 것이 이건희, 홍석현 족벌의 숙원사업이라는 것은 온 천하가 알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인사가 방송위원이 될 경우, 신문과 지상파 방송을 동시에 소유하지 못하게 한 현행 방송법을 고치자고 달려들 것은 뻔하다. 조중동의 목소리가 신문에서 끝나지 않고 지상파 저녁종합뉴스시간에도 똑 같이 전달됨으로써 여론의 다양성은 한국사회에서 없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어떤 자들은 대통령 특보출신이고, 어떤 자는 '정신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자이고, 또 어떤 자는 재벌과 족벌언론의 하수인이다. 이들이 한국의 방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방송사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방송위원으로 추천받은 사람들이다. 지금도 방송이 진흙탕을 구르는데 이들이 방송위원이 되면 똥통인들 마다하겠는가.

정치권력을 쥔 자, 정치권력을 쥘 자들이 맘대로 방송위원을 인선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저항도 한 번쯤은 고려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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