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 너나 잘 하세요!
060704 시민의신문 기고문



광고 이야기부터 하자.
태평양 바다를 가로지르는 화면 위로 “우리 앞에 일본이 달려갑니다.” “우리 앞에 중국이 달려갑니다.” “우리 앞에 세계가 달려갑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각 나라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일본 8.3%, 중국 14.6%, 캐나다 17.2%)이 자막으로 뜬다. 이어 “한국의 시장점유율 2.6%”라는 자막이 뜨고 미국의 등장한다. “이 곳은 세계 최대의 시장 미국. 우리는 이 시장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라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선택, 한미 FTA. 이제 세계 앞에 더 큰 대한민국이 달려갑니다.”라는 말로 광고는 끝이 난다.

국정홍보처에서 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홍보용 광고물이다. 한미FTA에 대한 국내 저항, 이미 수 백 개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 농민들이 치열한 '한미FTA저지'를 위해 국민운동본부를 일찍이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국정홍보처에 38억1천700만원의 예산을 예비비로 긴급 편성했다. 그리고 첫 홍보작품(?)이 위의 광고물. 6월1일부터 지상파, 지하철, 인터넷 동영상 및 배너광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미FTA. 독일월드컵이 전야제가 한창인 지난 6월9일. 그 날은 한미FTA 1찬 본 협상이 미국워싱턴에서 끝난 날. 한국언론은 한미FTA보다 월드컵에 올인한 날이기도 하다. 쟁점과 평가가 전혀 없었던 언론보도, 그나마 나온 보도는 '1차 본 협상이 끝났다' 정도가 모두. 2차 본 협상이 7월10일부터 서울에서 시작한다. 독일월드컵 결승전이 7월9일임을 감안할 때 한국과 미국 정부는 보도의 사각지대에 숨어서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셈.

이런 의도는 신라호텔 주변의 집회 신고로 드러난다. 10일부터 14일까지 '환경정화 및 교육질서 캠페인'을 한다는 명목으로 신라호텔 정문 장충체육관 유관순 동상 옆 등 신라호텔을 빙 둘러싼 집회신고를 '신라호텔'에서 이미 해 버렸다. 일절 시위대가 접근할 수 없는 상태.

적절한 정보공개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미FTA협상. 일시부터 장소까지 '온갖 장난'을 다 동원하는 정부. 이런 정부가 한미FTA협상의 '있지도 않는 정당성'을 담은 광고물을 제작, 광고하는 데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

더구나 이 광고는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된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 마치 우리에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해 미국시장 점유율을 높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굳이 일본과 중국을 등장시켜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것. 광고가 애초 객관적인 정보제공과 국민들의 합리적 판단을 위한 것이 아닌 감정적 호소를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브리핑이 기사를 조작한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홍보처에서 운영하는 국정브리핑은 6월30일 사과문 하나를 게시한다. “국정브리핑은 6월 14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해 대학생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언론도 쟁점만 다루지 말고 객관적 정보 줬으면’ 제하의 기획물에서 연세대 학생들의 인터뷰가 없었음에도 인터뷰를 한 것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는 것.  

그 기사는 한미FTA에 관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강의실에서 토론하는 연대생들을 스케치, 학생들과 인터뷰한 내용인데, 이런 인터뷰는 없었던 것. 이 기사에 나온 연세대 정외과 강영준 학생은 “2주 전 학과 사무실을 통해 국정홍보처가 한미 FTA에 관심이 많은 학생 4-5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와 나를 포함한 학과 친구들의 이름, 연락처를 주었다”며 “그런데 갑자기 케이블 TV인 국정홍보처 산하 한국정책방송(KTV)에서 국정브리핑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연락했다며 방송 출연을 요청해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나와 다른 학생들이 하지도 않은 인터뷰 내용이 기사로 올라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 씨는 지난달 22일 기사를 작성한 국정홍보처 국정브리핑에 항의 전화해 자신의 이름을 뺀다. 하지만 이 기사는 발언자만 '연대생 강영준'에서 '순천향대생'으로 이름만 바뀐 채 동일한 인터뷰 내용으로 게재된다.  

객관적인 정보마저 슬쩍 왜곡한 광고물을 제작, 수 십 억 원의 홍보비용을 투입해 국민들의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2차 본 협상 자리를 집회신고로 선점하며, 심지어 한미FTA를 홍보하기 위해서라면 기사마저 조작하는 행위를 보이는 정부. 국정브리핑이 조작기사의 제목으로 뽑은 '언론도 쟁점만 다루지 말고 객관적 정보를 줬으면.'을 보면서 이런 말이 떠오른다. "정부여!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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