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FTA의 칼끝, 카메라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방송공사해체, 편성쿼터 축소, 외국인의 지상파 지분 소유 금지 해제, 외국방송 재송신 시 한국어 더빙 및 한국 내 광고영업 금지 해제. 이것이 한미FTA의 방송영역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대목. 이 중 다른 영역도 문제지만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및 미국 무역대표부가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점은 바로 편성쿼터 축소. 스크린쿼터 축소와 함께 미국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영역이다.

핵심은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비율 고시'를 제거하는 것. 국내제작 프로그램을 EBS의 경우 100분의 70이상, EBS를 제외한 모든 지상파는 100분의 80이상 방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편성쿼터가 없어질 상황이다. 미국의 압력과 더불어 심지어 국내 방송사의 일부 편성파트가 이것도 규제라고 미국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의무편성비율이 없어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지금은 모든 지상파가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 KBS가 630억 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 거의 전무후무한 '지상파의 손해나는 장사'였다. 그 전이나 그 후 지상파가 개국 초기를 제외하고 적자를 봤다는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 하지만 이미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지상파 위기'는 대두되어 왔고, '위기징후'는 더 늘어가고 있다.

지상파 위기의 구체적인 징후들을 살펴보자. 지상파간의 시청률 무한경쟁이 가장 대표적인 지상파간 위기 요인이다. 이미 월드컵 편성의 '올인'에서 무한경쟁의 실태를 확인했다. 오히려 지상파간 경쟁으로 인해 지상파 전체 시청점유율이 하락하는 현상이 드러났다. 최근 들어서는 KBS의 드라마 인기 작가를 다른 경쟁사가 1회당 5백만 원 가량의 원고료를 무려 2배 이상 인상한 1천만 원 이상의 원고료를 제시해 자사로 빼가버렸다. 그리고 지난 해 8월까지 톱 클라스 배우의 1회당 드라마 출연료가 2,500만원이라고 해서 시끌벅적했는데, 올 해 들어 어떤 여배우는 5천만 원, 어떤 남자 배우는 무려 1회당 1억 원의 출연료를 지급받았다. 전적으로 방송사간 무한경쟁이 불러온 재앙이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전체 투입 예산 대비 이익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지상파간 시청률 무한경쟁은 자충수다.  

지역지상파DMB 권역획정 등 서울지상파 대 지역지상파의 갈등 과거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증폭하고 있고, 특히 KBS의 경우 지역방송 광역화 후유증 등은 단순한 지역 대 서울의 갈등이 아니라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상호 '감정선'을 건드는 첨예한 갈등구도다. 이  또한 지상파 위기에 있어 내부 요인이다.

외부 요인을 간단하게 보면, 더 이상 보완재 아니라 이미 대체재로서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케이블TV의 급격한 성장이다. 전체 1,700만 가구 중 무려 1,300만 가구가 케이블TV로, 200만 가구가 스카이라이프 즉 위성방송을 통해서 지상파를 시청하고 있다.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는 불과 200만 안팎. 지상파라는 망 자체가 의미를 잃어버린 상황. 이 와중에 수신환경 개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글쎄. 다채널유료방송매체가 이미 한국방송시장을 점령해 버린 가운데 지상파가 유일하게 살 길이 디지털 전환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수신환경 개선이 영 불투명. 방송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서 유발시킬 수 있는 산업적 효과가 무려 229조 원이라고 주장하는 정통부, 그 정통부는 오히려 16조 산업유발효과를 가진 와이브로에 목 숨걸지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에는 관심 없다.

이 밖에도 지상파를 지지하는 학자는 극소수고, 지상파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그 나마 내년이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조항에 걸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 이뿐인가? 통신은 호시탐탐 지상파를 먹기 위해서 달려들고 있고, 와이브로니 HSDPA니 하는 이동식 멀티미디어 등이 상용화되면서 '축소일로의 광고파이'를 더 내줘야 할 지경이니, 더 이상 지상파의 위기를 서술하면 뭐하나. 속만 쓰리지.

이렇게 지독한 위기환경에서 치명타가 바로 한미FTA다. 3-5년 이후 한국지상파는 더 이상 흑자기조는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현재의 한미FTA부터 차근차근 위기요인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만약에 편성쿼터축소 내지 해제가 현실이 되면...

경영진은 일단 제작자들부터 자를 수밖에 없다. 피디 기자는 말 할 것도 없고, 카메라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스탭들은 미국의 값 싼 프로그램 때문에 제작의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다. 드라마가 외주비율에 의해서 KSB 68명 MBC 67명 SBS 48명가량의 드라마 피디들 중 한 해 동안 한 작품도 못하고 있는 수가 허다한 상황, 여기다가 편성쿼터마저 없어지면, 제작기회는 더 적어진다. 밥만 축낼 수밖에 없는 자리. 지금처럼 지상파가 흑자를 내고 있으니 그래도 살아있지 적자기조면 잘릴 수밖에 없다. 피디만 잘리나? 카메라를 비롯한 스탭들은 온전할까?

외국인의 지상파 지분 소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 미국의 지상파네트워크 ABC방송은 1,000만이 살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LA지역을 기자 15명으로 커버한다. 외국인이 지상파 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국내의 일간지와 30대 재벌도 역차별 논란 때문에 지상파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MBC-조선일보-머독계열', 'KBS2-중앙일보-타임워너계열'이라는 조합이 가능해진다. 편성쿼터가 무너지고 외국산 뉴스도 한국어 더빙을 장착하면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의 콘텐츠를 지상파 메인뉴스에서 50% 이상 방송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게 된다. 지금의 인원 중 50%는 나가야 된다는 의미다. 거기다가 일간지가 지상파 소유지분을 갖고 경영에 참가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자와 지상파 기자가 경쟁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1,000만의 LA를 15명으로 커버하는데...경영혁신 운운하며 대규모 해고사태는 명약관화. 카메라기자도 추풍낙엽의 신세.  

한국인이 한국의 뉴스를 접하기 어렵게 되고, 지역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소식에 어둡게 된다. 시청자들에게도 직격탄이다. 지상파 구성원들이 자신들만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엄한 시청자까지 함께 끌고 들어가는 격.

민주주의는 여론과 문화의 다양성 위에 선다. 한데 신문과 방송이 동일한 소유주에 의해서 장악됐을 경우, 그것도 미국을 제2의 모국이라 부르는 친미사대주의자와 '진짜' 미국이 장악했을 때 한국은 민주주의는 없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이들이 결정할 것이고, 이들이 결정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이끄는 국정이나 국회가 만들어낼 결과물은 빤하지 않는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의 출발점이 바로 한미FTA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 뭘 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다.


2006. 7. 10.

-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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