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일 개최된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는 단군 이래 최대라는 26개국 정상이 참가한 만큼 도하 각 신문들은 연일 파격적으로 지면을 할애하며 이를 비중있게 다루었다.`아시아와 유럽 동반 번영', `화합 하모니', `남북화해 국제공증', `신세일즈 외교'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정상회의의 의미와 성과를 부각시켰고 전면 화보와 대형 박스기사로 행사 광경과 진행과정을 상세히 소개했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동차 `짝홀제' 시행이나 요란한 경호에 눈살을 찌푸렸을 뿐 회담의 내용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경향신문 22일자는 `시민들 무관심 그들만의 잔치'란 제목 아래 주최측의 준비 부족과 미숙한 운영들을 지적하며 시민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그 무관심이 과연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따져보면 `적반하장' 격이 아닐 수 없신자유주의와 세계화란 명제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분분한 요즘 ASEM 개최는 이를 공론화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한계레신문을 제외하고는 세계화 공방에 대한 논의를 충실히 담아낸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또 정상회의 개최의 의미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두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정부의 발표자료와 대동소이한 기사로 도배질해놓았다.신문들은 회담을 전후해 `ASEM의 서울선언 의미 크다'(한국), `ASEM 장래 실천에 달렸다'(경향), `ASEM의 성과와 과제'(동아), `ASEM과 서울선언'(조선), `ASEM선언, 실천이 뒤따라야'(문화), `서울선언, 남북평화장전으로'(대한매일) 등의 사설을 게재하며 의의를 강조하기에 바빴다.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 대목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스트레이트와 해설기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들이 탈 자동차와 묵을 호텔과 먹을 요리, 정상 부인들의 면면 등 곁가지만 부각시켰고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통역, 경호, 관광, 홍보, 의전 등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 경호와 의전 등을 이유로 기자들의 취재를 철저히 통제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다.ASEM 정상들의 모임에 맞춰 국내외 NGO 활동가 8백여명도 민간포럼을 열고 노동자 권리보장과 차별 철폐 등을 촉구하는 `민중의 비전'을 채택했지만 대부분의 신문들은 여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만여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을 때도 이튿날 신문들은 폭력사태와 교통체증 등을 문제삼았을 뿐 이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특히 대한매일은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4일 전부터 `ASEM 2000 특집'이란 제목 아래 연일 전면기사로 홍보에만 열을 올렸고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정부의 치적을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반대로 한겨레는 NGO들의 주장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보였으며 21일 `세계화 이름으로 민중 삶 파괴말라'는 제목 아래 외국 참가자의 기고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22일자에 `불거진 태생적 한계, 아시아 유럽 정치적 가치관 충돌' 제하의 기사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정상간의 의견 다툼을 소개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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