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 대신한다더니  

                                                                                   2006년 08월 23일

뉴스에서 죽음은 급이 있다. 유명 정치인들의 죽음은 방송 첫머리에, 아니 속보 자막으로 나오거나 긴급 속보가 편성된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죽었을 경우는 어떠한가. 단신 뉴스로 처리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방송이 모든 국민의 경조사를 챙길 의무는 없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지금 포항에서는 사망 뒤 20여 일째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주검이 있다. 사망한 사람은 노동자 하중근씨다. 그는 지난 7월16일 포항 형산강 로터리에서 포스코 투쟁 관련 집회에 참여했다가 다쳤고,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뇌사상태에 빠져 결국 지난 1일 사망했다. 건설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170여명이 부상을 입었고, 심지어 한 임산부는 유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7월21일 포스코 본사 점거가 끝난 이후 보도의 양을 급속히 줄였고, 하중근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단신으로 처리하기 급급했다. 언론의 외면과 편파적인 보도에 분노해 건설노동자들이 서울로 와서 항의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규모 연행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방송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르쇠는 다시 무시의 단계로 넘어갔다. 이후 숱하게 많은 집회를 해도, 전국적인 노동자대회를 열어도 언론에서는 무시해 버렸다.

심지어 한 방송사는 18일 “산업도시 포항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우리경제의 한 축인 포스코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노조의 오만은 공권력을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킨 특정세력 탓”이라는 논평을 내보내면서 우리 사회 안의 ‘괴물’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방송 논평에서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과 주5일제 요구, 다단계 하청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은 파업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경찰과의 충돌만을 부각시켜 포항 포스코 사태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하도급 문제와 건설 일용직 문제에 접근했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자본의 프레임에 갇혀 자본이 알려내는 사안을 국민에 전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 이는 사건을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방송사의 선택이다.

선택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국민을 외면한 언론에 대해 ‘존재의 이유’를 묻는 편지들이 날아들고 있지만 언론은 읽기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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