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월드컵에 넘어갔다  
                                           6.21

한 사안에 대한 지나친 편애는 다른 사건에 대한 심각한 소외를 가져오게 된다. 방송사의 지나친 ‘월드컵 사랑’은 뉴스를 보면 쉽게 확인된다. 이후 한국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는 고민을 담은 뉴스는 찾아 보기 어렵다.
  
지난 6월 1일부터 11일까지 방송사 메인뉴스 꼭지를 분류해 보면 모두 1019건의 기사 중 398건(39%)이 월드컵으로 채워져 있다. 한미FTA 1차 협상과 관련 내용은 61건(6.0%)에 머물렀다. 한미FTA 협상의 경우 잘못 길을 들게 되면 우리나라 전체가 큰 영향을 받는 사안이다.

하지만 정작 협상이 시작됐을 때 언론의 주관심사는 월드컵이었다. 방송사는 시청광장 응원 입찰에 컨소시엄을 꾸려 월드컵 ‘올인’ 채비를 했고, 수 백여 명을 독일로 보내는 등 월드컵에 사활을 걸었다. 이에 비해 한미FTA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보도 역시 정부 발언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나마 FTA 특별 취재팀을 구성하는 식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방송사의 마음은 ‘월드컵’으로 넘어간 상태다.

그러기에 월드컵의 경우 매일 다섯꼭지 이상의 기사를 만들어 낸 반면 한미FTA의 경우 사안 하나하나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임에도 ‘언급’만 했을 뿐 더 이상 깊이 있게 접근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1차 협상이 끝난 뒤에도 “우리측, 첫 단추 잘 끼워졌다” “미국측,협상 마무리 길조라며 만족” 등 양국 정부의 일방적인 소감만이 전달됐다. 왜 유익한 협상인지, 뭐가 잘됐다는 건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족했다. 또, FTA 저지 원정단의 시위를 전달하는 내용에서는 경찰과의 충돌이 있을 것인가에 주목했지,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선전하는 것은 중요한 뉴스다. 그만큼만 보도하면 된다. 하지만 그 수위가 넘어서면 언론은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다. 현재 ‘월드컵 방송’이라는 비판이 사방에서 들리지만 방송사는 귀를 막고 있다. 한국사회의 판을 완전히 흔들어 놓을 한미FTA 2차 협상을 앞두고 방송은 사안의 경중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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