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의 세상시비]
거란족 여진족이 되려는가?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제안하는 전문가모임’이 지난 2일 유료방송시장에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건의했다. ‘방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 프로젝트’라는 설명과 함께, ‘사회의 다원화 전문화에 부응하여 보편적 서비스를 지향하는 지상파채널이 담기 힘든 각 분야의 소수를 대변하는 채널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란다. ‘제안한 종편채널은 또 하나의 지상파급 채널이 아니’라고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입반대’이다. ‘방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프로젝트’라는 주장은 허구다. “새로운 채널의 성격으로 시민 전문가가 함께 만드는 오픈미디어, 각 분야 20%의 니즈(욕구)를 반영하는 생각상자, 합리적 여론형성의 공간이 되는 시민공론장, 자본과 광고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미디어, 민간의 창의성을 북돋고 효율성과 경영 책임성을 가능케 하는 민영방송, 독립제작사들이 참여하는 출판형 외주시스템 등을 제시, 각 분야의 소수를 대변하는 채널”의 성격, “시민과 전문가가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시민단체의 참여는 필수”, R-TV가 지향하는 성격이다. ‘옥상옥’이다. 차라리 종편채널을 허가받으려는 힘이 있으면 RTV개혁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리고 지상파급 채널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 또한 허구다. 한국의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어떤 경로로 시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왜 허구라고 단정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5년 8월 현재 총가구수 대비 79.1%, 즉 1,770만 가구 중 1,400만 가구가 SO에 가입돼 있다. 스카이라이프에 가입해 있는 가구 수가 200만 가구다. 90% 이상이 유료방송시장에서 지상파를 시청한다. 기존의 지상파처럼 뉴스 교양 드라마 오락 등을 모두 하는 유료종합편성채널이다. 지상파급 맞다. 또 그들은 평균 시청률 5%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주장도 하는 모양. EBS의 평균 시청률이 불과 0.8~0.9% 수준이다. 지상파 3사도 평균 시청률이 5% 안팎이다. 목표로 하는 시청률은 지금의 지상파3사와 맞먹는 비율. 이렇게 되면 지역방송사와 EBS는 죽으란 소리다. 이들의 존재이유는 없는가? 또 하나의 지상파급 채널이 보호받아야 할 가치를 붕괴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종편채널을 허용했다고 치자. ‘전문가모임’이 어떤 전문가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모임이 주도하는 성격의 종편채널을 허용하면, 다른 전문가 모임의 종편채널을 무슨 수로 거부할 것인가? 돈벌이 수단으로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전문가모임’이 등장하여 ‘산업발전을 위한 종편채널 전문가모임’이라고 하면 허용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한 나라에 도대체 종편채널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마지막으로, 도무지 정세분석에 대해서는 무식한 집단이 소위 ‘전문가모임’이다. 한미FTA정국이다. 미국의 USTR보고서와 암참보고서 쯤은 읽어보고 이런 주장을 해야지...

FTA에는 미국 투자자의 한국투자에 대한 장벽을 완화 또는 제거하고 양국에서 투자자들에게 내국민대우를 제공하는 규정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통신업체, 케이블 TV 관련 SO(시스템 운영업체), NO(망 운영업체), 비뉴스/종합 채널 프로그램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을 49%로 위성방송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을 33%로 제한하고 있는 규정을 제거해야 합니다. FTA는 또 현재 종합채널과 뉴스채널에 대한 PP(프로그램 제공업체)에 대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금지하고 있는 조항도 제거해야 합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KOREA)가 2006년 발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정책보고서> 통신과 정보기술 파트인 15쪽과 투자파트인 24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미국은 2차 FTA협상부터 지속적으로 PP소유제한 철폐,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외국기업 투자 금지 조항 제거를 요구해 왔다. 이 시기에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게 종편채널을 허용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투자의 내국민대우’라는 전문용어를 안다면. 쉽게 말해서 유료방송시장에 종편채널을 허용하면 미국에도 줘야한다. 미국프로그램의 한국어 방송 말이다.

‘CSI과학수사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편당 수입가격이 1천 달러에 불과하다.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이 편당 거의 5억 원 꼴이다. 주몽을 제외하고 ‘CSI과학수사대’와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누가 1천 달러, 100만원이면 되는 시청률을 5억 원 들여서 국내 제작할 것이며, 국내 제작해도 미국의 값싼 컨텐츠를 무슨 수로 당해낼텐가.

안방은 멀지 않은 미래에 미국의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종편채널에 점령당할 것이다. 또한 여론 다양성은 일방적인 미국이익 중심의 관점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로 인해 급격히 왜곡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문화적 정체성도 없고 여론의 다양성도 현실적인 힘의 관계에서 무너져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거란족과 여진족처럼 역사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한민족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비약이라 말하지 마라. 정신과 영혼이 없는 사람, 정신과 영혼을 미국에 빼앗긴 민족. 이는 없어진 민족이나 다름없다.


// 언론노보 제431호 2007년 2월 8일 목요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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