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의 세상시비]
매국노는 매국노라고 불러야 한다



한미FTA협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분명코 ‘매국노가 맞다’는 확신이 선다. 그들은 반대하는 쪽을 향해서 쇄국론을 펼치며 수구로 몰아가지만 백번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쇄국론자라고 치자. 하지만 적어도 쇄국론자들이 나라는 팔아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쇄국론 이후 나라를 팔아먹는다.

그들이 보였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비밀 밀실주의였다. 이완용은 1909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비밀리에 매국에 대한 기본적인 밑그림을 합의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림에 그려진 대로 하나 하나 실현시켜나가는 협상을 벌인다.

마지막 남은 하나. 이완용 송병준은 국권을 싸다 받쳤으면서도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점만 다를 뿐 지금 현 정권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어찌 그리고 98년 전 한일병탄의 법적 구속력을 갖게 하는 ‘한일늑장’의 그 과정과 이리도 닮아 있을까!

다른 분야는 빼고, 19개 분과 중 전자상거래분과에서 처음으로 합의에 이르렀다는 보도를 보며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눈이 빠지게 살펴본다. 한국언론이 미국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보가 거의 없다. 미국 신문을 살펴본다. 적어도 한국에서 접근 가능한 미국의 언론도 이에 대해서 거의 언급이 없다. 도대체 합의에 이르렀다는 전자상거래 분과의 합의 내용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2가지만 알려졌다. ‘영화와 음악에 대한 전자상거래에서는 더 이상의 장애물도 없어졌다’는 것과 ‘DVD와 CD는 물리적 상품으로 이동하는 것은 기존의 거래 방식대로 관세를 매긴다’는 것뿐이다.

아는 지식 다 동원해서 풀어보면, 영화와 음악이라는 디지털 컨텐츠에 대해서 한미간 교역장애가 사라졌다는 것인데, 궁금한 것이 많다. 교육 의료 금융 등의 디지털제품(digital products)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영화와 음악 외 방송프로그램을 비롯한 시청각미디어 디지털제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의했는지, 온라인 VOD는 어떻게 처리했고, 개방형 VOD와 폐쇄형 VOD는 또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고 각각 어떤 합의를 했는지.

지금 서울은 소경들만 있다. 지금 서울은 귀머거리만 있다. 선천적이거나 사고로 인해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매국노들이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거리면서 국민들을 보도 듣도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세포는 위기를 느끼며 살갗을 돋우고 있는데, 뚜렷한 증표 하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니 참으로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영화와 음악의 디지털제품이 미국과 한국의 자유로운 교역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것만 해도 재앙이다. 영화만 예를 들어 보자. 지금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이것은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이다. 그래서 스크린쿼터라는 규제도 아날로그시절에 통용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적 규제모델이다. 한데 미국은 아날로그 규제인 스크린쿼터를 반쯤 깨버렸다. 한국의 매국노들이 내응(內應)한 결과다. 하지만 반쪽짜리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 7차 협상의 드러난 결과를 보면, 아예 반쪽짜리 보호막도 걷어내 버렸다.

미국과 한국의 매국노가 시청각미디어분야에서 한국영화가 또 다시 방화(邦畵)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영화시장이 미국의 값싼 물량공세에 의해서 장악되면 결국 한국영화를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한국영화를 제작하지 못하면 감독 촬영 무대 그래픽 음악 시나리오를 담당해 온 사람들이 영화판을 떠날 것이며, 그 기간이 길어지면 그들을 불러 모우고 싶어도 모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멕시코가 그랬고, 가까이로는 대만이 그런 상황이다.

한 번 둑이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있지만, 한미FTA협상은 한 번 풀어주면 돌이킬 수 없는 조항이 현재유보나 완전개방이기 때문이다. 영화만 그렇겠는가? 영어 알파벳도 배우기 전에 팝송을 불렀던 시절이 불과 20여년 전 한국의 대중문화판이었고, 대중음악판이었다. 60년대 지식인들의 향유물이 팝송과 미국영화였다면, 70년대는 대학문화를 제외한 대중문화는 온통 미국을 빼고 논의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80년 대학문화로부터 각성된 한국의 대중문화가 이제 ‘귤이 회수를 건너더니 탱자가 되었네’하고 평가할 만한 대중적 기반을 겨우 만들었더니, 노무현 김종훈 김현종 한덕수와 같은 가면쓴 미국인들에 의해서 또 다시 쩍쩍 금이 가고 물이 새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먼저 방송영역에서 PP의 소유지분을 완화해서 미국이 직접 한국 내에서 PP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지 여부, USTR의 무역장벽보고서와 암참보고서에 등장하는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했는지 여부 등을 일차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방송의 한국어더빙을 어떤 수준에서 허용했는지를 살핌으로써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여론의 다양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가늠하고 우리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제는 매국노는 매국노라고 불러야 하며, 가면쓴 미국인이 한국인 행세하는 것을 폭로하고 그들이 더 이상 한국 땅을 밟지 못하도록 공항을 폐쇄하여 쫓아내야 할 것이다. 다행이 앞서 언급한 ‘미국인’들이 모두 스페인과 미국에 나가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죽을래? 살래? 하며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더 이상 그들과 한국 땅을 같이 밟고 살고 싶지 않음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 언론노보 제432호 2007년 2월 15일 목요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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